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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점령지 합병투표에…“민주주의 흉내” “안보리 퇴출”

Jimie 2022. 9. 22. 05:29

러, 점령지 합병투표에…“민주주의 흉내” “안보리 퇴출” [뉴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점령지 합병 투표 23일 일제 실시

우크라 대통령실 “힘으로 러시아 위협 제거할 것” 경고

유엔 총회서 우크라 사태 최대 화두로…“전쟁 멈추라”

‘러시아 상임이사국 퇴출’ 안보리 개혁론 다시 도마위

푸틴, 제한적 동원령 전격 발표… 예비군 30만명 대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에 대해 정식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를 오는 23~27일(현지시간) 실시한다고 밝히자, 국제사회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국과 독일은 이를 “가짜 투표”라고 비판했고, 프랑스는 “민주주의 절차를 흉내 낸 ‘패러디’”라고 조소했다. 유럽연합(EU)은 투표가 진행될 경우 러시아에 추가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우크라이나 반격에 조급한 러시아

 

러시아의 점령지 합병투표 결정은 우크라이나의 영토탈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앞당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러시아는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를 미처 점령하지 못하고 남부 점령지도 불안정해지면서 11월4일 ‘국민 통합의 날’에 투표를 시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가 동부 하르키우주를 대부분 탈환하고 헤르손과 루한스크주까지 위협하면서 이달 내 투표가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20일 타스, 로이터, dpa 통신 등에 따르면 대상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등 친러시아 세력이 독립을 선포한 공화국 이외에 남부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까지 포함하는 러시아 점령지 전체다.

이 같은 결정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합병된) 러시아 영토에 대한 침범은 모든 자위력을 동원할 수 있는 범죄”라며 주민투표 필요성을 역설한 직후에 내려졌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의장은 “시민들이 러시아에 합류하고자 한다면 그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힘으로 러시아의 위협을 제거하겠다고 경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가짜 주민투표를 강행할 경우 모든 대화 기회가 차단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번 주민투표 결정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위협은 힘으로만 제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의 주민투표 계획이 불법이고 조작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유엔 총회서 각국 정상들 러시아 규탄

러시아의 점령지 합병투표 발표에 이어진 제77차 유엔총회에서 각국 정상들은 입을 모아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며 우크라 사태 해결을 주문했다. 주요 발언자들은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막을 올린 유엔총회 일반토의에서 전쟁 중단과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국가별로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 일반토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우리가 2월24일(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작일)부터 목격한 것은 제국주의와 식민 시대의 복귀”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침략과 영토 병합 행위를 통해 우리의 집단 안보를 깨뜨렸다”고 비판했다. 주어진 시간의 두 배인 30분 가까이 격정적으로 발언한 마크롱 대통령은 주먹으로 연설대를 치면서 “오늘날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신제국주의에 공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첫 유엔 일반토의 연설에 나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제국주의의 귀환은 유럽뿐 아니라 글로벌 평화 질서 전체에 대한 재앙”이라며 러시아를 겨냥했다. 숄츠 총리는 “푸틴 대통령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전쟁과 제국주의적 야망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라며 “그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자신의 나라까지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발(發) 안보 위기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잔혹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침공을 용납하거나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의 대통령들도 “정당한 이유 없는 불법적인 전쟁”이라고 비난하며 평화적 해결과 철군을 요구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은 “전쟁에는 결코 승자가 없고, 공정한 평화 절차에는 결코 패자가 없을 것”이라며 외교적 해법 모색을 촉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미 PBS 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침략한 땅을 우크라이나에 반환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 계약직 군 복무를 홍보하는 모병 광고판이 설치돼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AFP연합뉴스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국 정상들도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이날 유엔 정상외교 무대에 데뷔한 윤석열 대통령은 구체적인 나라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오늘날 국제사회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또다시 세계 시민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엔 헌장의 철학과 원칙을 짓밟는 행위로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된다”며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행위를 근거로 안보리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독일 등과 함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제3세계 국가들은 대체로 서방에 비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 노력을 촉구하면서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대부분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 언급을 삼갔다. 아프리카연합(AU) 의장인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도 아프리카 대륙 지도자들이 한쪽을 선택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며 아프리카는 신냉전의 온상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병사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러시아로부터 탈환한 동북부 하르키우주 셰브첸코브의 검문소 앞에 서 있다. 셰브첸코브=AFP연합뉴스

 

◆독일·일본 “이 기회에”…상임이사국 진출 노려

이번 유엔총회에서는 그간 논의돼왔던 유엔 안보리의 개혁 문제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러시아를 상임이사국에서 퇴출하자는 안보리 재편론이 골자다. 안보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국이 포함된 상임이사국과 2년마다 교체되는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특히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독일과 일본은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유엔 안보리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튀르키예(터키)도 유엔 개혁론에 가세했다. 다음 날 공개 연설에 나서는 미국도 안보리 개혁론을 고리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태세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연설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5개 국가가 전세계 수십억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에 거부권을 지닌 것이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숄츠 독일 총리와 후미오 일본 총리는 러시아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퇴출론을 시사하며 자국이 대신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교도통신·도이체벨레(dw) 등이 보도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 일반토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독일과 일본 두 나라는 2004년 인도, 브라질과 함께 ‘G4’를 만들어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포함한 유엔 개혁을 촉구해왔다. 숄츠 총리는 유엔 안보리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촉구하며 독일이 상임이사국이 돼서 유엔 안에서 책임을 더 지겠다고 먈했다.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유엔 안보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하지 못했다며 유엔이 전세계 평화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할 전망이다. 이날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다음날 유엔총회 연설이나 유엔 사무총장 및 주요국 지도자들과 대화를 통해 안보리 개혁 문제에 대해 비중 있게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보리 개혁 과제는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던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승전국 위주로 구성된 안보리 구성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각국의 엇갈린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개혁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특히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막강한 거부권으로 강제력을 지닌 결의안을 부결시킬 수 있어 거부권 행사 문제는 개혁 과제의 핵심으로 꼽혀왔다.

올해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관련 논의가 다시 한 번 분출했다. 전쟁 직후 러시아에 대한 규탄과 함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안보리 결의안이 상정됐으나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된 것이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보리를 우회해 유엔총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총회 결의안은 안보리 결의안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으나, 절대다수의 회원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인도주의적 위기를 일으킨 러시아의 책임을 인정한 만큼 강한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효과는 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군 동원령을 전격 발표했다. 예비역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소집 대상으로,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약 30만명이 해당된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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