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죽을 각오로 말한다면, 친인척이나 측근 비리 척결에선 전두환 정권이 문재인 정권보다 나았다 싶다. 적어도 그땐 청와대가 수사를 막진 않았다는 얘기다.
느닷없이 전두환 정권을 언급한 건 ‘문 정권의 경찰수장’ 김창룡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그가 “경찰의 중립성과 민주성 강화가 국민의 경찰로 나아가는 핵심적 요인”이란 사의 표명 입장문을 던졌다(그리고 휴가를 간 걸 보면 별로 비장하지도 않다).
이것만 보면 윤석열 정부는 경찰의 중립성과 민주성을 뒤흔들고 있고, 김창룡은 자기 한 몸 던져 경찰의 독립성과 민주성을 지키는 투사인 줄 알 판이다.
흥. 김창룡은 국민의 기억력을 상당히 우습게 아는 모양이다. 2020년 7월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다. ‘시진핑의 충견 문재앙’ 식으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혐의로 체포된 20대 남성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엄격한 잣대로 기소 송치한 경찰 측 판단이 문제가 없다”고, ‘표현의 자유’와 정반대의 뻔뻔한 견해를 밝히고도 경찰청장이 된 사람이 김창룡이다.
이 청년의 무죄가 지난달 말 확정됐다. 대학도 처벌을 원치 않았는데, 군사정권 때도 안 하던 정권의 비위를 맞추는 수사에 박수 친 경찰 수장이 감히 ‘국민의 경찰’을 입에 올린 거다.
그뿐인가. 고(故) 박원순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를 여당 인사들이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이라 부른 걸 놓고도 김창룡은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문 정권의 혀’처럼 굴었던 ‘김창룡 경찰’에 문 정권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수완박으로 권력을 몰아준 것을 온 국민이 목도했던 바다. 그런 ‘공룡경찰’이 윤석열 정부에선 아무 견제도 안 받겠다고?
꼭 40년 전인 1982년 5월 7일. 동아일보 사회면엔 ‘대화산업 회장 이철희 씨 부부 구속’ 기사가 톱으로 실렸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 처삼촌의 처제인 장영자(당시 38)와 그 남편 이철희(59) 전 중앙정보부 차장을 대검 중수부가 4일 구속했다는 기사다.
이들 부부는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사들에 접근해 돈을 빌려주고 최고 9배의 약속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돌리는 수법으로 7100억 원을 사기해 먹었다. 2019년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로 1조6000억 원의 규모의 피해가 벌어진 데 비하면 그저 그래 보이지만, 그때 돈으로 정부 예산 10%에 육박하는 액수다. 그래서 단군 이래 최대 어음 사기 사건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나오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미담’이었던 건…이철희-장영자 부부 구속이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의 제보로 시작됐다는 점이다(2017년 이순자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 물론 검찰은 일신제강 등이 사기를 당했다고 진정해 수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81년 저질연탄 사건 때 부정확한 수사 발표로 대통령에게 혼이 났던 검찰이 감히 정권을 건드릴 리 없다.
이순자는 자서전에서 한 친척으로부터 장영자 소문을 전해 듣고는 “남편에게 송구하다는 말과 함께 제발 확실하게 알아봐달라고 부탁했고, 남편은 청와대 민정팀에 내사를 지시했다”고 썼다.
전두환은 당초 외환관리법 위반 정도로 마무리할 작정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쿠데타 동지들은 참지 않았다. 특히 국정 전반을 주무르던 실세 ‘쓰리 허’ 중 허화평 정무수석, 허삼수 사정수석은 이참에 대통령까지 컨트롤 하겠다는 기세로 전두환을 압박했다(2005년 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정치근 검찰총장이 대통령 처삼촌 이규광 대한광업공사 사장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해도 전두환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라는 발칵 뒤집혔다. “정의사회 좋아하네” 소리가 들끓은 건 물론이다. 5공화국 구호가 ‘정의사회 구현’이었으니 문 정권 식으로 하면 ‘내로남불’이었던 셈이다. 17일 월요일 오전도 전두환은 이규광 구속 불가였다. 오후 5시 박철언은 진언했다. “각하! 용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전두환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그래! 구속해!”
작은 아버지의 처제라면, 한치 건너 두 치다. 이순자는 그래서 대통령 남편한테 제보했을 수 있다. 사위나 딸정도면 못했을지 모른다. 전두환도 경찰 출신 형 문제나 동생 문제는 결국 정권 끝난 뒤 5공 비리로 터져 나왔었다.
문 전 대통령에게 처삼촌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개운치 않은 사위 문제는 있었다. 청와대 참모는 그때 깨끗한 처리를 진언하기는커녕 문제없다고 쌍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그래서 9월 검수완박이 시행되기 전에 채용 관련 뇌물 사건을 급하게 수사 중이라고 하던가.
지난달 8일 ‘김창룡 경찰’은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를 구속했다. 장하원은 문 정권 청와대 정책실장를 지낸 장하성의 동생이다. 2017년부터 ‘장하성 동생 펀드’를 팔아 2562억 원의 투자자 피해를 낸 사람을 정권이 바뀐 다음에야 뒤늦게 구속한 것도 유치하다.
양심이 있다면, 김창룡은 사과를 해야 한다. 나는 제대로 못했지만 앞으로 잘하기 바란다며 고개 숙이기 바란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무한정 늘어난 경찰 권한은 적절한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 경찰국이 아니라면 ‘양심국’이라도 좋다. 김창룡 같은 경찰수장이 또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와대와 직거래 하지 않는 통제기구가 있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느닷없이 전두환 정권을 언급한 건 ‘문 정권의 경찰수장’ 김창룡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그가 “경찰의 중립성과 민주성 강화가 국민의 경찰로 나아가는 핵심적 요인”이란 사의 표명 입장문을 던졌다(그리고 휴가를 간 걸 보면 별로 비장하지도 않다).
이것만 보면 윤석열 정부는 경찰의 중립성과 민주성을 뒤흔들고 있고, 김창룡은 자기 한 몸 던져 경찰의 독립성과 민주성을 지키는 투사인 줄 알 판이다.
김창룡 경찰청장(가운데)이 지난달 27일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문 정권 경찰이 중립적이었다고?
흥. 김창룡은 국민의 기억력을 상당히 우습게 아는 모양이다. 2020년 7월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다. ‘시진핑의 충견 문재앙’ 식으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혐의로 체포된 20대 남성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엄격한 잣대로 기소 송치한 경찰 측 판단이 문제가 없다”고, ‘표현의 자유’와 정반대의 뻔뻔한 견해를 밝히고도 경찰청장이 된 사람이 김창룡이다.
이 청년의 무죄가 지난달 말 확정됐다. 대학도 처벌을 원치 않았는데, 군사정권 때도 안 하던 정권의 비위를 맞추는 수사에 박수 친 경찰 수장이 감히 ‘국민의 경찰’을 입에 올린 거다.
그뿐인가. 고(故) 박원순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를 여당 인사들이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이라 부른 걸 놓고도 김창룡은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문 정권의 혀’처럼 굴었던 ‘김창룡 경찰’에 문 정권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수완박으로 권력을 몰아준 것을 온 국민이 목도했던 바다. 그런 ‘공룡경찰’이 윤석열 정부에선 아무 견제도 안 받겠다고?
2020년 7월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창룡 후보자가 ‘피해자’와 ‘피해 호소인’의 차이에 대해 묻는 미래통합당 의원의 질의에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하고 있다. 채널A 화면 캡처
● 40년 전 터진 단군 이래 최대 어음 사기사건
꼭 40년 전인 1982년 5월 7일. 동아일보 사회면엔 ‘대화산업 회장 이철희 씨 부부 구속’ 기사가 톱으로 실렸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 처삼촌의 처제인 장영자(당시 38)와 그 남편 이철희(59) 전 중앙정보부 차장을 대검 중수부가 4일 구속했다는 기사다.
이들 부부는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사들에 접근해 돈을 빌려주고 최고 9배의 약속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돌리는 수법으로 7100억 원을 사기해 먹었다. 2019년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로 1조6000억 원의 규모의 피해가 벌어진 데 비하면 그저 그래 보이지만, 그때 돈으로 정부 예산 10%에 육박하는 액수다. 그래서 단군 이래 최대 어음 사기 사건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나오는 거다.
1982년 7월 장영자(오른쪽), 이철희 부부가 어음사기사건 결심공판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동아일보 DB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미담’이었던 건…이철희-장영자 부부 구속이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의 제보로 시작됐다는 점이다(2017년 이순자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 물론 검찰은 일신제강 등이 사기를 당했다고 진정해 수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81년 저질연탄 사건 때 부정확한 수사 발표로 대통령에게 혼이 났던 검찰이 감히 정권을 건드릴 리 없다.
● 친인척과 측근 비리, 참모진은 참지 않아야
이순자는 자서전에서 한 친척으로부터 장영자 소문을 전해 듣고는 “남편에게 송구하다는 말과 함께 제발 확실하게 알아봐달라고 부탁했고, 남편은 청와대 민정팀에 내사를 지시했다”고 썼다.
전두환은 당초 외환관리법 위반 정도로 마무리할 작정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쿠데타 동지들은 참지 않았다. 특히 국정 전반을 주무르던 실세 ‘쓰리 허’ 중 허화평 정무수석, 허삼수 사정수석은 이참에 대통령까지 컨트롤 하겠다는 기세로 전두환을 압박했다(2005년 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정치근 검찰총장이 대통령 처삼촌 이규광 대한광업공사 사장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해도 전두환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라는 발칵 뒤집혔다. “정의사회 좋아하네” 소리가 들끓은 건 물론이다. 5공화국 구호가 ‘정의사회 구현’이었으니 문 정권 식으로 하면 ‘내로남불’이었던 셈이다. 17일 월요일 오전도 전두환은 이규광 구속 불가였다. 오후 5시 박철언은 진언했다. “각하! 용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전두환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그래! 구속해!”
고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씨의 작은아버지 이규광 씨가 1982년 5월17일 밤 검찰청으로 연행되고 있다. 장영자 씨의 형부이기도 한 이 씨는 장 씨로부터 상당한 뇌물을 받아 호화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일보 DB
● 경찰 권력의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작은 아버지의 처제라면, 한치 건너 두 치다. 이순자는 그래서 대통령 남편한테 제보했을 수 있다. 사위나 딸정도면 못했을지 모른다. 전두환도 경찰 출신 형 문제나 동생 문제는 결국 정권 끝난 뒤 5공 비리로 터져 나왔었다.
문 전 대통령에게 처삼촌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개운치 않은 사위 문제는 있었다. 청와대 참모는 그때 깨끗한 처리를 진언하기는커녕 문제없다고 쌍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그래서 9월 검수완박이 시행되기 전에 채용 관련 뇌물 사건을 급하게 수사 중이라고 하던가.
지난달 8일 ‘김창룡 경찰’은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를 구속했다. 장하원은 문 정권 청와대 정책실장를 지낸 장하성의 동생이다. 2017년부터 ‘장하성 동생 펀드’를 팔아 2562억 원의 투자자 피해를 낸 사람을 정권이 바뀐 다음에야 뒤늦게 구속한 것도 유치하다.
양심이 있다면, 김창룡은 사과를 해야 한다. 나는 제대로 못했지만 앞으로 잘하기 바란다며 고개 숙이기 바란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무한정 늘어난 경찰 권한은 적절한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 경찰국이 아니라면 ‘양심국’이라도 좋다. 김창룡 같은 경찰수장이 또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와대와 직거래 하지 않는 통제기구가 있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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