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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104년만에 국가부도, 美 손에 달렸다…"푸틴 오판" 쏟아진 탄식

Jimie 2022. 5. 4. 08:15

러시아 104년만에 국가부도, 美 손에 달렸다…"푸틴 오판" 쏟아진 탄식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1차 부도' 낸 러시아, 한달 유예기간 끝…

4일 '디폴트' 판가름 국제사회 관심 집중…

러 일단 송금했지만, 채권자 전달여부 불투명]

 

러시아 루블화와 미국 달러/ⓒ 로이터=뉴스1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초강력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국가부도(채무불이행·디폴트) 여부가 4일 결정된다. 러시아는 달러화 국채 2건에 대해 지난달 초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지 못해 '1차 부도'가 났는데 이후 한 달 간 주어진 유예기간이 이날 끝난다.

 

러시아는 일단 국가부도를 피하려고 자국 내 달러를 끌어모아 해외결제기관에 국채 이자를 송금한 상태다. 하지만 미국·영국 등 서방국이 채권자들에게 이자를 전달할 지가 관건이다. 이자 지급이 제 때 이뤄지지 않으면 디폴트에 해당한다. 결국 러시아의 국가부도 여부가 미국 손에 달린 셈이다.


"급한 불 끄자" 러시아 6.5억달러 입금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달 29일 달러화 표시 채권 2건에 대한 이자와 원금 6억5000만달러를 입금했다고 밝혔다. /사진=블룸버그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AFP통신·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달 29일 미국 씨티은행 런던지점에 달러화 국채 2건에 대한 이자와 원금 등을 입금했다고 밝혔다. 상환 금액은 2022년 만기 달러화 국채 이자와 원금, 2042년 만기 달러화 국채 이자 등 약 6억5000만달러(8200억원)다.

이는 러시아가 달러화 이자를 갚지 못해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 전문가들의 예상을 깬 것이다. 시장에선 20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이듬해 세계 최초 사회주의 연방국가를 수립한 러시아(소비에트 연방)가 104년 만에 처음으로 대외 채무를 갚지 못하는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모스크바=AP/뉴시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지난달 "러시아가 디폴트에 빠지면 유럽 경제도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6430억달러(815조원) 가운데 해외 은행에 예치한 4000억달러(507조원)이 동결된 상태다. 러시아 주요 은행들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국제 금융거래가 중단되는 등 자금 경색이 심각하다. 러시아가 달러화 대신 루블화로 국채 이자와 원금을 갚겠다고 주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을 감독하는 신용파생상품결정위원회(CDDC)는 "달러 표시 채권에 대한 루블화 상환이 명백한 계약 위반이며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루블화로 채무를 변제하겠다던 러시아 재무부가 자국 내 달러 보유고를 털어 부랴부랴 부채 상환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루블화는 국제거래에 널리 쓰이는 기축통화가 아니어서 가치가 불안정하고 사용에도 제한이 많다는 것도 한 요인이다. 채권자들이 루블화 결제를 용납할 수 없는 이유다.


美·英 등 서방국 '불허'하면 곧바로 디폴트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국제사회 경제제재가 본격화하며 루블화가 폭락하자 지난 2월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람들이 현금인출기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 로이터=뉴스1

 

문제는 러시아가 달러화 송금을 마쳤어도 국가부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예기간이 끝나는 이날까지 채권자 계좌로 이자가 지급돼야 일단락된다. 씨티은행 런던지점이 받은 이자가 채권자 계좌로 이체돼야 하는데, 이 사안은 미국·영국 등 서방국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미 재무부는 "미국 은행을 통한 러시아의 달러화 표시 국채 상환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러시아 재무부가 지난달에도 결제를 시도했지만, 담당 금융기관인 미 투자은행 JP모건이 송금 처리를 거부하며 이체 시한을 넘긴 것도 미 재무부의 '불허' 지침 때문이었다. 이번 씨티은행 런던지점은 영국 금융기관이지만 미국의 입김이 여전히 통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미국과 함께 대러시아 제재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인 만큼 채권자들의 이자 수령을 막을 수도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만약 이번에 러시아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으면 국제시장에서 러시아 국채는 사실상 휴지 조각이 돼 이를 보유한 채권자들이 큰 피해를 본다. 현재 러시아 정부와 금융기관, 공기업 등이 발행한 달러·유로 등 외화 표시 채권은 총 1500억달러(약 19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채권 잔액은 396억달러(50조원)로 이 가운데 절반을 해외 금융기관이 갖고 있다. 이는 이번에 부도 위기를 넘기더라도 똑같은 어려움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 AFP=뉴스1

 



"우크라 침공은 치명적 실수" 크렘린궁서도 불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1918년 부도와는 파급 정도를 비교할 수 없다. 당시엔 "제정러시아 시대 빚은 갚을 수 없다"며 자발적 부도 선언을 한 것으로, 채권의 80%가 프랑스 몫이었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맞물렸던 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은 외환이 아닌 루블화 채권을 갚지 못해 채무지급을 유예·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가부도 위기를 자초한데 대해 러시아 대통령실 크렘린궁 내부와 국영기업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크렘린궁 관계자는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킬 치명적인 실수이자 오판"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을 부추기는 극소수 강경파에 휩싸여 경제·사회 피해를 우려하는 관료들의 조언은 듣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영기업의 한 관계자는 "푸틴 대통령과 측근들이 서방 주요국의 전방위 제재 속도와 강도에 매우 놀란 분위기"라며 "이번 전쟁 때문에 푸틴 집권 20년간 이룬 경제적 성장이 모두 파괴될 것"이라고 했다.

송지유 기자 cli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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