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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순간 잡은 윤석열, 反포퓰리즘 정치 기수 되나

Jimie 2022. 3. 12. 08:34
별의 순간 잡은 윤석열, 反포퓰리즘 정치 기수 되나
  • 서문표 자유기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1 14:00
‘윤석열다움’과 ‘탕평정치’ 기대하는 목소리 많아
“선거 공신과 주변 참모에 휘둘리지 말아야”



“아직 중세시대 수준에 머무른 대한민국에서 근대인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사람.”(《별의 순간은 오는가》, 천준 저) 윤석열 당선인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에서 ‘0선’ 대선주자의 의의를 거론하며 평가한 내용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2021년 3월4일 검찰총장을 사퇴한 지 1년 만에, 정치에 데뷔한 지 8개월 만에 새 정부의 집권 카드를 거머쥐며 여의도 정치의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냈다. ‘조직력보다는 미디어 영향력’ ‘논쟁을 잠재우는 것보다는 새로운 논쟁을 만들어내며 어젠다를 창출하는 과감함’ ‘주변의 비평과 시선보다는 인재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중시하는 경향’ 등이 핵심 요인이다.

지난 8개월 동안 선거 캠페인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윤 당선인에게 조언과 자문을 제공했던 중진 정치인들에 따르면, 그는 ‘플랫폼 리더십’을 보여주는 인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스스로 특정 사안에 대해 직접 판단하고 일을 추진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와 논리가 도출되는 과정에서 리더 자신이 취사선택하며 방향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지난날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제왕적 권력화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만기친람형 리더십,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두드러지는 독단과 폐쇄화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잠재성이 윤 당선인에게 내재돼 있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지배적인 평가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3월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대본부 해단식 에 참석해 단상으로 올라오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신당 창당이냐, 국민의힘 입당이냐 선택의 갈림길

지난해 3월4일, 윤석열 당선인은 ‘검찰총장 사직’이라는 초유의 결단을 내림으로써 정국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윤 당선인은 공개 행보를 하지 않은 채 매체들과의 통화를 통해 ‘전언 정치’를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였던 LH 사태에 대해 “공적 정보를 도둑질해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망국의 범죄”라는 강한 입장을 피력했다. 당시 정부는 국무총리실과 국토부를 중심으로 합동조사단을 꾸려 LH 직원들의 신도시 부지 투기 의혹을 전면 감사하도록 했으나, “국토부가 LH를 조사한다는 것은 사실상 셀프 조사에 가깝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윤 당선인은 “개발 계획과 보상 계획을 정밀 분석해 돈이 될 만한 땅들을 전수조사하고 거래 시점, 단위, 땅의 이용 상태와 매입 자금원 추적을 통해 실소유주를 파악해야 한다”며 방법론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징계 정국 무렵부터 상당한 미디어 영향력을 얻은 윤 당선인은 지난해 4월2일 재보선 사전투표를 통해 무언의 메시지를 내며 야권에 힘을 보탰고, 정치적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피력했다.


국민의힘이 서울·부산 두 곳에서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러낸 후, 윤 당선인의 정치 데뷔 소속 정당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 등 보수·우파 입장에서도 동질감을 느낄 만한 메시지를 자주 발신했지만, 중도·진보 성향의 지식인이나 논객들과도 가깝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아들인 이철우 연세대 법대 교수,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이 윤 당선인과 가깝다는 보도가 잇따른 터였다. “평소 그의 소신이나 정치적 참신성 등을 부각하기 위해서는 제3지대에서 신당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정치 메커니즘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펴는 구 민주당계·민생당계 인사들의 조언이 잇따랐고, 윤 당선인의 ‘귀를 잡고 있는’ 오래된 지인들도 “구태보수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국민의힘 입당은 이미지 손상 요인이 된다”고 경고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국민의힘 내부 친이(親李)·비박(非朴) 의원들을 중심으로 윤 당선인을 영입하고자 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1년 6월말 대권 도전 선언 행사가 있었던 매헌 윤봉길 기념관에는 정진석·권성동·이달곤 등 MB(이명박) 정부와 깊은 관계를 맺은 친이계 인사들과 안병길·최형두·태영호 의원 등 친이계와 가까운 초선 의원들이 참석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수사를 총지휘하며 직권남용죄 적용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었던 윤 당선인이었지만, 몇몇 원로를 통해 해원(解冤)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추정도 돌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소값론’을 이야기하며 윤 당선인의 입당을 압박했다. “정통 보수정당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만, 유일 야권 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압박은 현실론이기도 했다. 대선 날짜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윤 당선인이 신당을 창당하고, 자신과 공감대가 형성된 여야 정치인들을 모아 정치 세력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따르는 과제였기 때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회동을 두고서도 ‘제3지대 연대’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어차피 야권 단일후보를 노린다면 종가인 국민의힘 입당이 훨씬 현실적이지 않냐”는 정치권 인사들의 냉정한 평가도 무시할 수 없었다. 때마침 윤 당선인과 비슷하게 대쪽 이미지로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었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을 결정하며 화제가 되었다. 2021년 7월30일 윤 당선인은 결심 몇 시간 만에 권영세 의원에게 입당을 통보하며 단일 야권 주자가 되기 위한 의지를 피력했다.


2021년 3월4일 사퇴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윤핵관’ 논란으로 한 차례 위기 겪기도

당시 호남권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던 이준석 대표 측에서는 ‘기습 입당’에 대해 매우 불쾌한 뉘앙스를 내비쳤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으로서 국민적 인기를 모은 윤 당선인이었지만, “갓 정치에 입문한 사람으로서 제1 야당 대표를 존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을 내놓는 이 대표 주변의 목소리도 있었다. 권성동·장제원·윤한홍 의원 등 윤석열 당선인과 가까운 것으로 분류되는 주요 인사들이 언론에서 이 대표에 대한 우려를 전하고, 익명의 관계자발로 비판성 멘트도 보도되면서 ‘윤핵관’(윤석열 후보의 핵심 관계자)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지냈던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는 “윤핵관 논란은 사실상 프레임”이라며 “대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후보 중심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선거는 후보의 핵심 측근들이 치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치 신인인 윤 당선인의 신선함을 상당 부분 반감시키는 측근정치 프레임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바이럴 역량이 탁월한 2030세대(MZ세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윤 당선인의 행보에 대한 비판이 가시화되고,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기사화하면서 국민의힘 내부가 급격히 세대 간 갈등 논란으로 빨려들어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윤석열 당선인의 국민의힘 입당 이후 대선주자 선출을 위한 경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보수정당 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치열한 ‘다자간 경쟁’이 시작됐다. 이준석 대표는 경선기간 동안 16번의 토론을 필수조건으로 명시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의 관리자’라는 입장을 공고히 했다. 한편으로는 검찰식 상명하복 소통에 익숙한 윤 당선인이 정치인 간 자유토론에 미숙할 것이기에 매우 불리한 경쟁 방식이라는 평가도 돌았다. 윤 당선인 입장에서 가장 큰 고역은 이 대표와의 대립 구도가 공식화되면서 자칫 정권교체 프레임을 덮어버릴 수도 있는 세대교체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었다.

1987년 이후 우리 정치에서 세대교체 전술은 정권연장을 위해 여당이 혁신 전략으로 사용하거나, 야당 내 공천 개혁을 위해 이용되곤 했는데, 윤-이 갈등(또는 ‘투스톤 대전’) 프레임은 1960년생인 윤 당선인과 1985년생인 이 대표 간에 벌어진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 프레임으로 변질될 위험이 컸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가운데 32%의 비중을 차지하는 MZ세대가 윤 당선인에게 냉소적일 수 있다는 우려는 보수진영 전체의 문제의식이 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가장 유력한 주자였던 윤 당선인의 입지를 공고히 한 이슈가 있었다. 첫째로 ‘고발사주’와 ‘장모 대응 문건’ 논란으로 인해 범여권의 ‘검찰 세력’(윤석열·손준성·김웅) 비판론이 조직적으로 가해지면서 외려 윤석열 자신이 정국의 핵심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윤 당선인이 사건과 직접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없고, 법적 책임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시되는 상황임에도 네거티브가 가해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두 번째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에 치명적인 대장동 이슈가 터진 일이다. 지자체 권력을 활용한 부동산 개발비리 논란은 LH 사태의 확대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특유의 ‘줄서기’ 문화와 조직선거 풍토가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2021년 11월5일 발표된 본경선 결과에서 윤석열 후보는 47.85%, 홍준표 후보는 41.5%의 최종 성적을 기록했는데, 홍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는 윤 후보를 10% 이상 앞서는 것으로 드러나면서(윤석열 37.94%, 홍준표 48.21%) “당원 조직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최종 후보가 뒤바뀔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윤석열 당선인은 성북구 보문동에서 태어났다. (오른쪽)윤 당선인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서대문구 연희동이다.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운데), 여동생과 함께 윤 당선인이 연희동 자택에서 밝게 웃는 모습 (오른쪽)모친 최정자 이화여대 교수(왼쪽), 여동생과 바른 자세로 서 있는 윤 당선인

이준석·안철수는 포용…김종인과는 각자도생

최종 후보가 된 후 윤 당선인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보도를 통해 상당히 많이 분석되고 있어 일일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정치 신인인 윤석열 당선인이 갈등을 조정하고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다.

우선 MZ세대와 선배 세대 간 갈등 구도 중심에 놓여 있었던 이준석 대표에 대해서는 포용과 설득의 자세를 취했다. 이 대표의 직설화법, 언론을 통한 윤핵관 비판, 이대남 마케팅의 논쟁성 등에도 윤 후보는 MZ세대를 겨냥한 캠페인 전략을 이 대표에게 일임함으로써 신뢰를 표현했다. 또 두 번의 ‘가출’에 대해서도 이 대표를 직접 붙잡으며 포용하는 모습이 당력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주된 평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서도 단일화 과정에서 꽤 긴 기간 줄다리기가 이어졌지만, 윤 후보의 인내와 설득 노력이 작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2월20일 안철수 후보가 ‘완주 선언’을 하며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윤 당선인은 3월2일 최종 TV토론을 마치고서도 안 후보를 직접 만나려고 애쓸 정도로 단일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야권 통합의 효과가 정량적으로 나타났느냐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론(異論)이 있지만, 정권교체를 원하는 지지자들에게 간절함을 보이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1대1 구도를 공고하게 만드는 데는 주효했다는 ‘정성 평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윤 당선인은 자신의 ‘플랫폼 리더십’을 부인하는 인사에 대해서는 단호한 모습을 취했다. 애당초 ‘별의 순간’을 언급하며 정치 멘토가 되고자 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중심의 선대위를 과감하게 해체한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뜨거운 경선 국면에서 윤 후보의 당선을 지지하는 발언을 우회적으로 했고, 중도진보 성향의 지식인과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보는 선대위가 요청한 대로 연기만 하면 된다”는 김종인 특유의 극언으로 인해 윤 당선인은 선대위 해체라는 초강수를 통해 결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충암고등학교 수험표 사진 속 중학생 윤 당선인 (오른쪽)윤 당선인의 서울법대(79학번) 시절

                     대학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쓴 윤 당선인 (오른쪽)9수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윤 당선인

광화문 대통령 선언…소통 리더십 기대

윤 당선인과 가까운 검찰 선배들과 두루 소통했다는 김택환 경기대 교수는 “국민 통합과 화합을 위해 최상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당선인의 과제를 언급하며 “여야를 두루 살피며 저녁 때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도 국민에게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김 교수는 “지난 민주당 정권의 모든 성과를 부인하지 않고, 대연정 수준의 제휴를 통해 윤 정부의 포용성과 신선함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거 공신이나 주변 참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여야를 아우르는 탕평인사를 통해 소수 여당 정권의 한계를 돌파하라는 주문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교수는 지난해 6월 강연을 통해 “윤석열은 통합의 정치를 추구하면서 넓은 스펙트럼의 민의를 대변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선거기간 내내 윤 당선인이 ‘포퓰리즘’을 비판해온 것도 나름의 장점으로 손꼽힌다. 트럼피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범한 미국의 바이든 정권, 강경한 아베 노선에 대한 반성으로 출범한 일본의 기시다 정권 등과 스펙트럼과 시대정신의 흐름 측면에서 결이 맞다는 것이다. 특히 통계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숫자에 대한 감각이 탁월하고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입체적 시각을 갖고 있는 윤 당선인이 “정부의 정책 추진 속도가 늦더라도 특정 진영만을 겨냥한 정치·정책을 펴는 대통령은 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는 지인들의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대선 때까지는 국민의힘이라는 외연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지만, 당(黨)과 정(政)의 분리를 당선 소감에서 직접 밝힌 만큼, 윤석열의 탕평정치가 첫 조각(組閣)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기존의 정당 정치인을 기용하는 방식이 아니라(문재인 정부 내내 표면화됐던), 다양한 진영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지식인들을 폭넓게 살핀 후 인재를 발탁할 것이라는 얼핏 이상적인 밑그림도 거론된다. 검찰에서부터 오랫동안 윤 당선인을 살펴봐왔다고 밝힌 한 법조인은 이렇게 예상했다. “집권 이후부터 진정한 ‘윤석열다움’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은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