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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천하의 역적' 푸틴 때릴때…美석학이 찍은 '진짜 악당'

Jimie 2022. 3. 5. 07:05

세계가 '천하의 역적' 푸틴 때릴때…美석학이 찍은 '진짜 악당'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3.05 05:00

 

푸틴은 바보가 아니다, 라고 미국의 강대국 외교 전문 석학 미어샤이머는 얘기합니다. 미어샤이머가 맞기를 바랍니다.TASS=연합뉴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천하의 역적으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전범(戰犯) 표현도 더는 새롭지 않죠.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푸틴은 물론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세상사 그리 간단할까요. 비판을 자초한다는 건 누구보다 푸틴 본인이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요. 푸틴 한 명 악당으로 만든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양한 깊이 있는 분석을 탐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문제가 아닙니다. 일종의 휴화산 같은 존재였습니다. 국제지정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던 까닭이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인들도 우크라이나 지지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의 한 시민이 든 우크라이나 지지 피켓입니다. 뉴스1

따져보자면 1994년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 선언부터 일촉즉발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당시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러시아에 안전 보장을 약속받는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으로 휴짓조각이 됐습니다. 8년이 지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그 사이에 미국 등 서방 강대국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잘못이라고 꼬집는 서방의 국제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대표주자가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입니다. 강대국 중심 현실주의 외교를 연구해온 석학이죠.

그는 수년간 꾸준히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한 순간부터 러시아의 침략에 직면한 것”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2014년 푸틴이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을 때도 그는 한 논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서구 세계에선 이번(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를 놓고 러시아의 침략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다들 푸틴이 이젠 우크라이나를 넘어 동유럽 국가들을 노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됐다.”

국제정치 대가,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 수년 전 방한 당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던 현장의 사진입니다. [중앙포토]

이번 전쟁을 두고도 미어샤이머 교수의 비판의 날은 푸틴보다는 미국을 향합니다. 침략 결정을 내린 건 푸틴인데, 우크라이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대(對) 러시아 제재를 본격화하는 미국이 잘못이라니? 무슨 이야기일까요. 푸틴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푸틴을 막지 못하고 사태를 방관해온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잘못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미어샤이머 교수를 미국 주간지 뉴요커가 지난 1일 인터뷰했습니다. 핵심을 추려 소개합니다. 읽는 맛을 살리기 위해 뉴요커의 국제문제 전문 기고자와 미어샤이머의 논쟁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그대로 전합니다.

-2014년의 주장, 즉 우크라이나 위기가 러시아 푸틴보다는 미국 잘못이라는 생각이 혹시 최근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고) 바뀌었는지?
“아니, 여전히 내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 2014년 2월 22일 (크림반도 합병 당시) 우리는 푸틴을 비판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푸틴이 소비에트연방을 소생(resuscitate)시키고 싶은 열망에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국가들을 노리고 있다는 스토리를 만들어(invented) 낸 거다. 사실 잘못은 미국에 있다. 미국의 어떤 정책 입안자나 외교 정책 분야의 어느 누구도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단지 이 모든 게 러시아 잘못이라고 말할 뿐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건 러시아인데?
“그렇다.”
 
-그런데 사실 지금 상황을 보면 푸틴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넘어 동유럽까지 목표로 하는 게 맞는 분위기 아닌가?
“우크라이나 전역을 그(푸틴)가 목표로 하는지는 지금으로선 말하기 어렵다. 자잘한 부분까지 꼬치꼬치 캐고(nitpick) 싶진 않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푸틴이 결국 우크라이나를 정복한 뒤 동유럽까지 전진해서 소련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한다고 생각할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현재 진행 중인 위기를 보면 푸틴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단언하기는 어렵다. 푸틴이 돈바스를 장악해서 하나 또는 둘의 독립국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 우크라이나 서부에 손을 대고(touch)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푸틴의 폭탄은 (서부에) 떨어지고 있지 않나?
“그렇지만 그건 핵심 이슈가 아니다. 핵심은 이거다. 어떤 영토를 정복하고 어떤 영토에 집착하는가. (중략) 사람마다 예측이 다르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러시아 폭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지역. AFP=연합뉴스

-(수도) 키이우엔 푸틴이 관심이 없다고 보나?
“키이우에 생각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키이우에 친러 정부를 수립하는 건 목적이겠지만.”
 
-방금, 키이우엔 생각이 없다고 본다고 하지 않았나?
“키이우라는 지역이 아니라, 수도인 키이우에 친러 정부를 수립해 정권교체를 하는 게 푸틴의 관심사라는 얘기다.”
이제라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러시아도 러시아지만, 중국 정책도 중요하다는 맥락에서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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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서 시간을 들여 노력을 해야 한다. 사실 러시아는 대(對)중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중국ㆍ러시아 그리고 미국이라는 세 강대국의 시대다. 미국으로선 중국을 대면하는데 있어서 러시아를 같은 편에 두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바보같은(foolish) 정책들은 러시아를 동유럽에서 몰아내고 중국의 품으로 보내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미국은) 유럽에서 벗어나(pivoting out of) 중국을 주도면밀히 다뤄야 한다.”

 

결국 강대국 현실외교의 대가답게, 미어샤이머 교수는 지금 미국에 문제인 건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설파합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법을 모색하는 합의)’라는 단어를 언급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모두스 비벤디를 맺을 가능성은 꽤 크다고(serious possibility) 본다. 러시아로서도 이제 와서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를) 사회주의로 되돌리려 하는 건 문제를 자초하는 일이다. 러시아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