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선관위 집단반발 “수십년 쌓아온 신뢰 무너져… 양대 선거 불복 나올 것”
선관위 직원 2900명, 조해주에 일제히 반기
중앙선관위 실·국장 등 간부진 “선거관리 안될 우려” 집단성명
내부 게시판에도 성토글 수백건 “피 토하는 심정” “文이 주군이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1월 24일 청와대에서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동하고 있다. 조 위원은 문재인 캠프 특보 출신으로 임명 당시부터 정치 편향 논란을 불렀다. /연합뉴스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21일 결국 사퇴한 것은 초유의 선관위 직원 집단 반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조 상임위원은 문 대통령이 임명할 당시부터 정치 편향 시비를 불렀다. 그런 조 상임위원이 ‘꼼수’로 임기를 이어가려다 선관위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불러오자 선관위 직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도 선관위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 상임위원은 전날까지도 임기 만료 후 비상임 선관위원으로 임기 3년을 더 이어가겠다는 입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오는 24일 상임위원 임기(3년)가 끝나는 그는 올 초 사표를 제출했었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반려했다. 그러자 야당은 물론 선관위 내부에서도 “현 여권이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친여(親與) 선관위원들이 감독하는 가운데 치르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우선 중앙선관위 간부진 등이 지난 20일 집단 성명을 냈고 전국 17개 광역 선관위 지도부 인사들까지 조 상임위원 사퇴를 촉구하고 나오면서 사태가 더 커졌다. 중앙선관위 실·국장단, 과장단, 사무관단은 공동 성명을 내고 조 상임위원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선거 관리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 우려된다”면서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퇴임) 기회를 놓친다면, 양대(대선·지방선거)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외부의 비난과 불복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간부 중심의 움직임에 6급 이하 직원 협의회 격인 ‘행복일터가꾸기위원회’도 성명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선관위 직원 전체가 “중립성이 훼손된다”며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일부 선관위 직원들은 조 상임위원 집을 찾아가 사퇴 촉구문을 직접 전달하려 하는 한편,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조 상임위원은 지난 19일부터 연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선관위 직원들은 조 상임위원 비서관을 통해 사퇴 촉구문을 그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중앙선관위 내부 통신망에도 “퇴임하기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탁한다” “주군인 문(文·문 대통령을 지칭)이 준 자리라서 안 떠나느냐”는 비판 글이 수백 개 올라왔다. 한 직원은 통신망 글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선관위의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했고, 다른 직원은 “국민 신뢰 잃으면 개헌 때 행안부 선거관리과와 지자체로 찢어질 것”이라고 했다.
조 상임위원이 사표를 내고도 대통령이 반려했다는 이유로 임기를 이어가려 한 것에 대해 한 직원은 “대통령이 말렸더라도 고사했어야 한다. 냉큼은 아니다”라고 했다. “조직에 애정이 없는 사람이 줏대도 없는 게 더 슬프다” “선관위가 과연 헌법기관으로 존재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글도 올라왔다. “조롱해도 좋아요. 해임하려면 해보세요. 주군인 문(文)이 주신 자리니까요”라며 조 상임위원을 비꼬는 글도 있었다.
헌법기관인 선관위 직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다. 조 상임위원 임명 이후 2020년 4·15 총선 부정선거 의혹 등 선관위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중립성 시비가 끊이지 않으면서 누적된 선관위 직원들의 자괴감과 불만이 폭발한 것이란 말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선관위는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키는 파란색의 택시 래핑 광고를 제작해 논란이 일었다. 선관위는 TBS의 ‘일(1)합시다’ 캠페인은 문제 삼지 않았지만 ‘보궐선거 왜 하죠?’ ‘내로남불’ 같은 문구는 못 쓰게 해 여당 편향이란 반발이 일었다. 중립과 공정성이 생명이 선관위가 최근 들어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비난을 자초하는 결정을 한 데는 선관위원 구성의 편향성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내부 비판이 커지게 된 것이다. 중앙선관위 고위 간부 출신 인사는 “1963년 선관위가 설립된 이래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데 대해 중앙선관위원장과 대통령이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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