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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공수처 ‘언론·정치 사찰’ 수사 착수

Jimie 2021. 12. 29. 05:49

검찰, 공수처 ‘언론·정치 사찰’ 수사 착수

  • 중앙일보
  • 하준호.하남현
  • 입력2021.12.29 00:15최종수정2021.12.29 01:10

검찰이 사찰 논란 관련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등의 피고발 사건을 배당하면서 사실상 수사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김 처장 등이 소환조사를 받게 될 수도 있어 공수처는 설립 1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대검찰청은 시민단체인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가 지난 23일 김 처장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28일 수원지검 안양지청 형사3부에 배당했다. 안양지청은 고발 취지 등을 살펴본 뒤 고발인이나 피고발인 조사 여부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법세련은 김 처장 등을 고발하면서 “공수처가 이성윤 서울고검장 ‘에스코트 조사’ 의혹을 보도한 TV조선 기자에 대해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허가(통신영장)를 받아 통신내역을 조회했다. 피의자와 전화통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통신영장을 받아 기자의 통화내역을 확인한 것은 공수처가 가진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행위”라고 주장했다.

법세련은 또 이날 “공수처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관련, 이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최초 보도한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에 대해서도 법원으로부터 통신영장을 받아 통신내역을 사찰했다”며 김 처장 등을 같은 혐의로 대검에 추가 고발했다.

김진욱도 소환 가능성 … ‘검찰개혁 상징’ 1년만에 존립 위기

법세련은 “통신영장을 통해 기자의 취재원 정보를 들여다보는 건 언론 자유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반(反)헌법적 범죄”라고 지적했다.

공수처 관할 검찰청인 안양지청은 이미 공수처 관계자 피고발 사건을 다수 배당받아 수사하고 있다. 공수처가 이 고검장 에스코트 조사 당시 정식 조서를 남기지 않은 점과 처장 관용차량을 제공한 데 대한 거짓 해명자료를 배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 공수처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관계자 소환 등 본격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형진휘 안양지청장은 이 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4차장 검사로 그를 보좌한 인물이다.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이날 외국계 기업의 임원 A씨가 지난 10월 13일 공수처 수사3부로부터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것으로 추가 확인됐다. A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혹시나 싶어 통신조회를 했더니 공수처로부터 통신조회를 당한 걸로 나타났는데 무척 당황스럽다. 내가 공수처 관련 사건에 연루된 것도 아니고 고소·고발 등 송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영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게 민간인 사찰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8일까지의 공수처 통신조회 대상자는 외신기자 2명을 포함한 언론사 기자 131명, 야당 정치인 43명, 일반인 35명 등 233명에 이른다. 공수처는 이날도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해명하지 않았다.

공수처 수사 주요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사찰 논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됨에 따라 공수처는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으로 내몰렸다. 지난 1월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으로부터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추앙받으며 화려하게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아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18년의 산고 끝에 탄생한 조직치고는 위기가 매우 빨리 온 셈이다.

공수처의 1년은 논란의 연속이었다. 권력자·고위공직자 부패 사건은 제대로 수사한 게 없고, 수사력 부재 및 정치 편향성에 대한 비판만 받았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선 물증 확보에 실패한 채 인신구속 영장만 연거푸 청구했다가 세 번이나 기각당하면서 망신을 당했고, ‘인권 친화적 선진 수사’를 하겠다던 김 처장의 다짐도 ‘허언(虛言)’이 됐다.

성과도 전무하다. 공수처는 아직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본 적이 없다. 공수처가 유일하게 마무리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사건도 공수처의 수사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 애초 공수처에 조 교육감에 대한 기소권도 없었고 감사원에서 이미 사실관계 파악이 끝난 사건이라서다. 자체 인지 수사 역시 ‘0건’이다. 여기에 전방위적 사찰 논란이라는 결정타가 더해지면서 첫돌도 안 된 공수처는 ‘존재의 이유’를 매섭게 추궁당하고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관은 결국 수사 성과에 따라 존재 가치가 드러나는데, 이런 면에서 공수처는 낙제점”이라며 “인권 수사를 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선진 수사기관이 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인권침해와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키우는 후진적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 경험이 없는 판사 출신을 공수처 1, 2인자로 뒀을 때부터 수사력 미비는 불 보듯 뻔했다”며 “정치적 중립성까지 훼손시킨 처·차장을 교체해 공수처를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대검 검찰개혁위원회에서 일한 김종민 변호사는 “여권의 졸속 추진 속에 검찰 개혁 및 선진 수사 기법 확립이라는 공수처법 도입 본연의 목적은 사라지고 공수처가 대통령 직속 정치 사찰 기구 성격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하준호·하남현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