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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裵湖)의 여인

Jimie 2021. 12. 1. 12:13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낀 장충단공원>의 작곡가 배상태님(배호의 삼종숙, 배호의 노래 40여곡 작곡) 은 당시 배호의 약혼녀에 대한 회상이다.

 

"약혼자가 병실에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자의 입장도 있고 하니까 배호가 숨지기 몇일 전에 내려 보냈어요. 시집도 못 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파혼을 하도록 한거죠. 형부가 공군 대령인가 대위인가 그랬는데,그 형부가 와서 데려갔죠."

 

 

 

가요계 데뷔 후 줄곧 신장병과 싸워야 했던 탓으로 몸을 아껴선지 배호는 연예인 가운데서 스캔들이 없는 생활을 했다.

 

배호는 1971년 사망 당시 29세 미혼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마음과 몸을 불사르며 사랑한 아가씨가 있었다.
 
7살 연하로 대구 공연에서 배호에게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었던 김씨 성을 가진 여대생 팬이었다. 얼굴이 하얗고 체구가 작았는데 배호는 '옥아'라고 불렀다.
 
배호는 지방공연 무대에서마다 대구 아가씨를 그의 약혼녀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또 신장병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와의 사랑을 불 태웠다. 주위에서 말리면 되뢰 화를 낼 만큼 배호는 그 아가씨에 넋을 잃었었다.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했던 배호는 생전 양가 부모 사이에 허락을 받아 그녀와 가깝게 지냈다는 말도 있다. 줄곧 신장병에 시달리다  방송출연 때 그녀와 가깝게 지냈다는 말도 있다.

 

배호가 1년 가까이 지병으로 동침 없이 동거만 한 그녀는 세브란스병원까지 그림자처럼 배호를 따라다니며 그를 간호하면서 건강 회복을 기원했다.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가끔 깨어난 배호는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예감한 듯 약혼녀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나는 안될 것 같아요. 당신이 홀로 남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아요. 그러니 가슴 아프지만 내 곁을 떠나 좋은 배필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주오.”

 

 

배호는 힘겨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이별 인사를 한 후 손목에서 스위스제 고급시계인 ‘파텍스’를 풀어서 그녀의 손목에 채워주었고 반지를 건내 주었다.


그녀의 눈물이 손목에 찬 시계 위로 떨어졌다.

병실 문짝을 붙잡고 한사코 남겠다며 울부짖었던 20대의 젊은 여인. 김옥아...

 

배호의 눈시울도 붉게 물들었다.

 

 

 

 

배호~'영아의 노래'

1971 지구레코드
백영호 작사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924T0dpJb7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