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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하는꼴 보니 200년 야당하겠다"

Jimie 2021. 9. 15. 18:06

"국힘 하는꼴 보니 200년 야당하겠다" [노원명 칼럼]

 

  • 노원명 기자
  • 입력 : 2021.09.12 09:36:22 수정 : 2021.09.12 09:48:19

이해찬씨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20년 집권'을 이야기했을때 그 말이 참 오만하게 들렸다. 요사이 그게 호언이 아니라 겸손이었음을 실감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집권기간에서 0 하나를 빼고 말한 것 아닐까. 200년 집권!

민주주의에서 200년 집권이 말이 되는가 할수 있지만 대한민국이 정권교체 가능성 있는 민주주의를 한게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20여년 남짓이다. 민주주의에는 여러 층위가 있고 거기에는 일당 전횡의 민주주의도 있다. 이웃 일본이 그렇다. 1955년 이후 자민당이 실권한 것은 1993년 8월~1996년 1월(2년 5개월), 2009년 9월~2012년(3년 3개월) 단 두차례, 총 5년8개월에 불과하다. 일본은 실은 일당 민주주의에 가깝다.

민주주의는 아니었지만 조정 안에 여러 붕당이 혼재했던 조선에선 숙종6년(1680년) 경신환국을 계기로 남인이 축출되고 서인 1당체제가 섰다. 이후 서인 주류가 된 노론은 흥선대원군이 등장할 때까지 정권을 놓지 않았다. 그게 약 200년이다.

 


일본 자민당과 조선의 노론이 장기집권한 것은 그들을 상대해야할 야당이 지리멸렬한 탓이 크다. 노론 시대의 만년 야당은 지역적으로 주로 영남에 기반한 남인이었다. 이들은 200년 동안 단 한번도 대안세력으로서의 실력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주자적 세계관의 노예였다는 점에서 그들은 노론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나을게 없었다. 중앙에서 쫓겨난 남인 주도 세력들은 물적토대인 장원, 신분질서 유지 기구인 향교를 통해 지역을 지배했다. 그들은 반상(班常)의 질서를 극대치로 향유한 영구 기득권으로서 사회안정(?)에 기여했다. 변혁을 두려워하고 현상유지에 골몰한 것은 중앙의 노론과 영남의 남인이 다를바가 없었다. 그들은 말로는 불구대천할 것처럼 싸웠지만 실은 공생관계였다.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이 하는 모양을 보면 '영남 남인 전철을 밟으려 작정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그들의 지역기반이 영남이라서가 아니라 정권교체보다 기득권 유지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주 영락없는 영남 남인들의 후예들이다.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가 '고발 사주' 혐의로 고발된 직후 공수처가 입건을 했다. 야당 의원실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기존의 정치문법으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대표로 있는 야당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나라가 뒤집혔을 것이고 대선을 제대로 치르기도 어려워진다. 실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수백억원대 김대중 비자금 의혹을 당시 여당이 폭로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막았다. 야당과 민심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얼마나 만만해보였으면 정권이 이렇게 나오는지 자괴감이 안드나. 아니나다를까 당 대표와 대선주자들의 대응을 보면 여당이 충분히 그럴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상적인 야당이라면 지금쯤 모든 경선일정을 중단하고 '야당후보 죽이기'에 결전을 선언했어야 한다. 후보들 제 나름의 속마음이야 어찌됐든 일단 '대선 개입'부터 한목소리로 성토하고 나서야 정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7일 라디오방송에서 "(만약 고발 사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정치적 행보에 치명적 타격일 것이다. 본인이 자체적 의지로 어떤 사주를 하려고 한 기도가 있다고 하면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그런 정황은 전혀 없다"고 시사평론가같은 논평을 했다. 자기당 유력 후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가정법'에 기초해 치명적 타격 운운하는 대표를 다 본다. 그는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에 임해서야 "공수처의 대선개입 시도"라고 발언 강도를 올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네거티브로부터 당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윤석열 입당을 종용하더니 이게 보호하는 것인가.

국민의힘 대선주자중 한명인 유승민씨는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나 "검찰에서 (고발장을) 만든게 확실하고, 당에 전달된게 사실이라면 윤 전 총장은 후보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의 격정 기자회견을 문제삼아 "분노 조절을 잘 못하는 것같다"고 했다. 홍준표 의원은 제보자 조성은씨가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난 사실이 드러나 사건 국면이 전환되자 "후보 개인 문제에 당이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면서 당 지도부의 윤석열 엄호를 경계했다. 또 다른 주자 장성민씨는 아예 윤후보 사퇴와 탈당을 주장했다. 정말 풀보다도 빨리 눕는다. 이러니 정권이 무슨 부담을 느끼겠나.

이번 사건 발단이 된 제보의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다. 빙글빙글거리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잘 짓는 김웅 의원은 그 표정만큼이나 알수없는 말만 늘어놓더니 사건에서 빠지려한다. 나는 그가 누구 계보인지는 들어서 알겠는데 그가 보수 정당인의 자격이 있는지, 교양인인지, 신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당당한 언행을 하는 사람은 아닌것같다. 그런 사람들이 한 역할하는 야당의 밑천이란건 뻔한 것이다.

 



홍준표는 윤석열을 제끼면 자기가 대선후보가 되고 유승민은 그런 홍준표를 제껴 자기가 대선후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럴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기들이 후보가 되고나면 이만한 네거티브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큰 판으로 보아 야당의 한 후보가 네거티브로 무너진다는 것은 정권교체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들은 그런 걱정은 아랑곳없이 오직 자기가 후보가 되는데만 혈안이 되어있다. 지난 대선에 나와 무참하게 진 그들은 지난 5년간 무슨 발전이 있었나. 그들은 검찰총장 윤석열이 조국•추미애로 상징되는 이 정권의 비이성과 독전할때 무얼 했었나. 영남 남인이 그랬던 것처럼 야당 기득권 놀음하지 않았나. 곁불쬔 거 아닌가.

남인이 200년 넘게 야당을 한 것은 노론만큼 집요하고 조직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현실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영남에 기반해 어떻게든 국회의원이나 해먹겠다, 그 국회의원을 해 먹으려면 누가 당권을 갖는게 좋고 어디에 줄을 서야 한다는 심리가 국민의힘을 영남 남인처럼 만들고 있다. 내년 대선 결과에 따라선 양당 체제가 붕괴되고 200년 일당독주 시대가 열릴수도 있을것 같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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