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iting Articles

대통령의 소신이 참사로 이어지는 조건

Jimie 2021. 8. 31. 09:44

[특파원칼럼/이정은]대통령의 소신이 참사로 이어지는 조건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1-08-30 03:00수정 2021-08-30 11:05

 

소신에 집착한 무능한 이행 ‘참사’
현실 외면한 채 조급한 밀어붙이기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포토맥 강변 위로 탁 트인 하늘이 펼쳐지는 미국의 워싱턴하버 상공에 헬기 두 대가 날아들었다. ‘뭔가 긴급히 출동할 사태가 터졌나….’ 백악관과 펜타곤이 가까운 이곳에 울리는 ‘두두두두’ 소리가 이날따라 왠지 더 요란하게 들렸다. 노천카페에서 점심식사를 하다 헬기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빛도 불안해 보였다.

이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13명의 미군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26일(현지 시간). 워싱턴하버에서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던 사람은 약속시간에 20분 늦었다. 백악관과 의회 주변 경호가 강화돼 주요 도로 진입이 차단된 탓에 교통정체가 심했다고 했다. 9·11테러 20주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 전해진 아프간의 테러 소식이 미국인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린 게 분명했다.

불안은 현실이 되고 있다. 아프간 현지에는 곧 추가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는 극도의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즉각 보복 공습에 나서면서 테러리스트들의 재보복에 따른 악순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며 아프간 철군을 선언한 미국이 역설적으로 테러의 문을 열어젖힌 셈이다.

아프간 철군은 당초 미국인 대다수의 지지를 받던 결정이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철군 지지’는 70%에 달했다. 그러나 철군 과정의 문제점과 이로 인한 비극의 현장이 미국인들의 안방에 그대로 전달되면서 이 비율은 2주 만에 20%포인트 넘게 급락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 평가를 추월하는 ‘데드 크로스’까지 발생했다. 사임 요구에 탄핵 주장까지 그를 흔들고 있다. 동맹들의 불신 속에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쳤던 그의 호언은 초라해졌고, 중국 견제에 집중하겠다며 중동에서 발을 빼려다 되레 발목이 잡히면서 전선(戰線)도 꼬였다.

주요기사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국익에 반하는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오랜 신념이라는 것은 뉴스도 아니다. 문제는 그 신념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고 이행하느냐 하는 것.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판단을 과신했고, 플랜B가 요구되는 급박한 상황 전개에 둔감했다. 탈레반이 순식간에 수도 카불을 점령해 버렸을 때도 그는 휴가를 즐기던 캠프 데이비드에 머물렀다.

참모들의 고언을 외면하고 철군을 조급하게 밀어붙인 것도 위험했다. 군 당국자들은 테러 세력의 부활 가능성과 병력 유지 필요성을 보고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9·11테러 20주년을 첫 시한으로 정했던 것도 패착이었다. 한 외신기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특정 기념일을 염두에 두고 성과로 포장하려는 욕심이 있었던 게 아니냐”며 “철군을 정치 쇼로 만들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책임을 지려는 흔적 또한 어디에도 없다. 책임을 추궁하는 폭스뉴스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가 탈레반과 맺은 평화협정 때문이었다. 그 내용이 뭔지는 아느냐”며 기자를 윽박지르는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은 민망할 지경이었다.

투철한 소신은 리더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신념이 잘못 펼쳐지거나 신중한 현실적 고려 없이 강행되면 잃지 않아도 될 목숨이 희생되는 참사가 벌어진다. 정책 결정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무너져 버린다. 그 고통은 늘 국민의 몫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횡설수설/이철희]닌자 미사일

이철희 논설위원 입력 2021-08-30 03:00수정 2021-08-30 03:03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테러 전쟁은 무인항공기(드론)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특히 전투용 드론의 등장, 즉 무인기와 정밀유도폭탄의 결합은 수백∼수천 km 밖에서 아군의 희생 없이 표적을 타격하는 군사적 혁신이자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표적을 오인해 엉뚱한 희생자가 생기고 민간인까지 폭발에 휘말려 사망하는 부수적 피해로 인해 현지의 반미(反美) 감정을 확산시켰다. 미국은 그 해법도 밀리테크(군사·military와 기술·technology의 결합)를 통한 보다 정교하고 깔끔한 무기 개발에서 찾고 있다.

▷미군이 28일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르하르주에서 이슬람국가(IS)의 한 분파인 IS-K의 고위급 표적 2명을 드론 공격으로 제거했다. 이틀 전 카불 공항에서 미군 13명을 포함해 200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낸 자폭 테러의 기획자와 조력자를 보복 살해한 것이다. 미 국방부는 민간인 사망자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보복 조치에 사용된 드론은 ‘하늘의 암살자’로 불리는 무인공격기 MQ-9 리퍼, 타격 무기는 ‘닌자 미사일’로 불리는 헬파이어 미사일 특수개량형(AGM-114 R9X)이었다고 한다. 적국 수뇌부나 테러조직 지휘부를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하는 ‘참수작전’의 핵심 전력이 동원된 것이다.

 

▷닌자 미사일은 기갑차량 파괴용인 헬파이어 미사일을 인간 표적용으로 개량한 비폭발성 운동에너지 미사일이다. 폭약이 든 탄두가 없고 그 대신 강철 칼날 6개가 표적에 충돌하기 직전 펼쳐져 내리꽂히면서 반경 50cm 영역을 파괴한다. 주변 피해를 최소화하고 목표만 확실히 해치우는 것이다. 그 칼날이 일본 자객 닌자(忍者)의 암살용 검처럼 생겼는데, 1970년대 미국에서 많이 팔린 주방용 식칼 브랜드 긴수(Ginsu)를 따서 ‘나는 긴수’라고도 불린다. 2017년 실전 배치된 이래 알카에다 등 테러 지휘부 제거에 사용됐다. 그 피격 현장 사진을 보면 주변에 폭발 흔적이 없고 차량만 갈가리 찢긴 모습을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이번 보복작전 지침은 “그냥 진행하라(Just do it)”였다고 한다. 바이든은 “이게 마지막이 아니다. 끝까지 뒤쫓아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며 미군을 희생시킨 테러엔 철저한 응징으로 본때를 보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미국은 일단 조기 철군을 통해 아프간의 수렁에서 벗어나더라도 테러와의 장기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그것은 밀리테크를 더욱 앞세운 특수작전일 것이다. 하지만 깨끗한 전쟁은 없고, 뛰어난 기술적 우위도 잘못된 전략 아래선 승리할 수 없다. 실패로 끝난 20년 전쟁의 초라한 뒷모습이 보여주듯.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