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이란 ‘美 실패’ 지적하며 신났지만 속은 타들어 가
뉴스1 입력 2021-08-17 13:05수정 2021-08-1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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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종전 선언을 한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에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2021.8.17/뉴스1 © News1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중동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 아프가니스탄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정파 탈레반이 재장악하면서 각국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탈레반은 구소련이 철수한 이후인 1994년 이슬람 수니파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세력이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전까지 아프간을 통치했으며, 지역 테러 단체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탈레반이 ‘20년 공백’ 이후에도 미군 철수 석 달 만에 다시 국가를 장악하는 건재함을 과시한 가운데, <뉴스1>은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인 장지향 정치학 박사와의 유선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의 중동 지형 변화를 전망해봤다.
◇3개월도 못 버틴 아프간 정부…“美 재건 실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아프간 철수 결정을 발표했고, 5월부터 실제 철군이 이뤄졌다. 8월 들어 미군과 미·유럽 연합군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병력, 영국군의 95%가 철수했으며, 이달 말일까지 완전 철수가 예정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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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아프간에 투자한 ‘20년 재건 사업’이 3개월 만에 무너지는 상황을 두고는 ‘명백한 미국의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 박사는 “아프간 정부군은 한번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하고 도망갔다”며 “미국의 대아프간 정책이 얼마나 실패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사태와 ‘판박이’로 비유되는 1975년 남베트남 붕괴는 물론, 이라크에 들어선 친미 정부 역시 IS와의 전투에 직면하자 미군으로부터 훈련받은 정부군은 미군이 준 무기를 버리고 다 도망갔다. 그나마 쿠르드족 민병대가 있어 IS를 격퇴했을 뿐, 미국이 침공해 재건을 명분으로 세운 정부는 늘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장 박사는 “미군이 훈련시키고 몇조 달러를 퍼부었다는 이라크 정부군도 아프간 정부군도 기본적으로 사기가 부족하다”며 “워낙 정부도 군도 부정부패가 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20년간 아프간에서 뭘 했느냐 하는 것은 분명히 지적할 문제”라며 “국가 재건을 거의 못한 거다. 정책의 실패”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철군 결정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미군의 아프간 주둔 목적은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을 막는 것이지, 국가 건설이나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한 발 물러섰지만,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인 아프간전은 국가 재건(nation-building)을 명목으로 정당화돼온 측면이 있다. 서둘러 이뤄진 철군은 물론, 아프간 여성들이 맞닥뜨릴 인권 위기는 앞으로도 바이든 정부의 발목을 잡을 정치적 약점이 될 수 있다.
◇‘美 실패’에 똘똘 뭉친 주변국들, 속으론 ‘비상’: 중국과 러시아, 이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고 나섰지만, 속내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게 장 박사의 분석이다.
중국은 미국의 아프간 철군 이후 가장 주목받아온 국가다. 전략적 요충지인 아프간은 긴 외세 개입의 역사를 갖고 있고, 영국에서 소련, 미국으로 이어진 지배 세력은 동시대 지역 패권을 대표해왔다.
장 박사는 “중국은 처음엔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지적하더니 이젠 떠난 게 잘못이라고 비판한다”면서 “말을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태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은 소련, 미국과 달리 군사적 팽창을 하지 않는 ‘현상유지’가 기본 원칙이고, 대외정책 기조도 내정간섭을 피하자는 것”이라면서도 “제일 공들이는 신장 위구르 억지가 탈레반발(發) 분리주의 촉진으로 흔들리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봤다.
이번 사태 직전인 지난달 말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직접 만났다. 이 자리에서 중국 측은 탈레반에게 신장 이슬람 위구르족 무장단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에게서 확실히 손 떼라‘고 지시,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딜‘이 지켜질지를 두고도 모든 패는 탈레반이 갖고 있다는 게 장 박사의 분석이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날 “아프간 사태는 미국의 패배”라며 “’이웃국‘이자 ’형제국‘으로서 아프간의 안정과 회복을 돕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그러나 이슬람 시아파 이란 정부는 ’숙적‘인 수니파의 탈레반 치하 아프간과 이웃·형제국이 되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애로가 있다.
탈레반 집권기인 1998년 북부 경제금융 도시 마자르이샤리프 주재 영사관에 탈레반 전사들이 침입한 사건으로 외교관 몇 명과 국영 언론 IRNA 통신 기자 한 명이 목숨을 잃은 뼈아픈 상처도 선명하다.
아울러 장 박사는 “탈레반이 보호하는 ISIS의 주적은 이슬람 시아파”라며 “이란은 탈레반과 (장기적으로 결코)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러시아는 벌써부터 “탈레반이 오니 가니 대통령 때보다 안전해졌다”(주아프간 대사), “결국엔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지난 7년간 탈레반과 접촉해온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아프간 특사)며 탈레반과의 관계 심화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한때 아프간을 지배하며 지역 패권으로 군림했던 역사를 감안하면, 상당한 저자세 태도가 감지된다.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이던 1979년 아프간을 침공해 ’10년 전쟁‘을 벌였지만, 1989년 아프간 지역에서 성장한 이슬람 전사 무자헤딘들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철수한 바 있다. 이후 소련이 세운 아프간 정부는 3년 뒤인 1992년 무너졌다.
중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아프간의 불안이 중앙아로 번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동시에, 아프간에서 집권하는 탈레반 체제가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의 발판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분석했다.
터키 역시 지역 강국으로서의 영향력 발휘와 함께 이란을 거쳐 유입될 대규모 아프간 난민 문제로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는 관측이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인한 위기를 우려하면서, 탈레반 체제를 아프간 합법 정부로 인정할지를 두고 계산에 들어갔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장 박사는 “중국과 이란은 물론, 러시아, 터키도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부재를 기뻐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동판 불안정이 이 나라들을 집어삼킬 것”이라며 “이들 국가가 미국이 빠진 힘의 공백을 어떻게 견딜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미국의 정책 실패를 여실히 드러내는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으로 중동판 불안정과 대혼란이 올 것이라고 장 박사는 전망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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