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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공포 정치 시작됐다…길거리서 휴대전화 검사, 호텔 침입해 혼인증명서 요구

Jimie 2021. 8. 17. 19:57

탈레반 공포 정치 시작됐다…길거리서 휴대전화 검사, 호텔 침입해 혼인증명서 요구

정부 관료 집·언론사까지 수색
호텔 침입해 혼인증명서 요구
고학력 여성들 신변 위협 증폭
공항선 총격으로 최소5명 사망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개최
英총리, G7 영상회의 제안

공관원 포함 한국인 전원철수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시민 수천 명이 미군의 삼엄한 경계 태세 속에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주변에 진을 치며 애타게 탈출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공항은 하루 전 탈출하려는시민들이 활주로로 뛰쳐나오면서 민항기 운항이 전면 취소되고, 시민들을 상대로 현장 발포가 벌어지는 등 최악의 혼란을 겪었다. [AP = 연합뉴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승리한 지 이틀째인 16일(현지시간) 수도 카불 거리는 공포에 휩싸였다.

조직원들은 경찰차를 징발해 자체 순찰을 돌았고 도시 곳곳에 검문소를 세웠다. 오후 9시부터 통행금지령이 내려졌으며 여성들은 거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탈레반이 카불 거리를 장악하고 정부 관료들의 집과 사무실, 언론사를 수색하면서 공포와 두려움이 퍼졌다"며 엄혹한 상황을 전했다. CNN방송도 "카불 거리는 소름 끼치도록 조용했으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눈에 띄게 적은 수의 여성만이 외출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탈레반 조직원들은 행인들의 휴대전화를 검사하기도 했다. 현 정부에 부역한 흔적이나 비이슬람적인 자료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드러난 웨딩드레스 광고는 흰색 페인트로 덧칠됐고 도시 전역의 상점도 문을 닫았다.

 

WSJ는 탈레반이 호텔 등에 들어가 불심검문도 벌였다고 전했다. 한 아프간계 캐나다인 여성은 WSJ에 탈레반 조직원들이 호텔 방에 들이닥쳐 남편과 자신에게 여권과 혼인증명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에 남편이 "독실한 이슬람 신자는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항의하자 조직원들에게서 폭행당했다고 설명했다.

한 여성 정치인은 자신의 집에 탈레반 조직원들이 들이닥쳐 경비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집 밖을 지키기 시작했다고 WSJ에 전했다. 한 20대 여성 공무원은 탈레반 조직원들이 이날 아침부터 아파트 입구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문을 잠근 뒤 정부 관련 자료를 모두 불태웠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 관련 서류는 남아 있다"며 "내가 과거에 힘들게 이룬 일을 모두 태워버리고 싶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카불뿐만 아니라 아프간 전 지역에서는 정부군에 대한 자의적 처형, 여성과 탈레반 조직원의 강제 결혼, 민간인 공격 등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탈출 인파로 인해 마비됐던 카불 국제공항은 17일부터 일부 항공기 운항이 재개됐지만 총소리가 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로이터통신은 전날 공항에서 최소 5명이 숨졌는데, 미군 발포 때문인지 군중 속에 압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프간 현지와 국제사회에서는 추가적인 폭력 사태 방지와 상황 수습에 나섰다. 아프간 사태에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주요 7개국(G7)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조율도 시작됐다. 아프간에서는 돈 가방을 들고 도망친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을 대신해 현지 정치 원로들이 카타르에서 탈레반과 협상을 시작했다.

이날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은 본인 트위터에 글을 올려 탈레반 지도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압둘라 압둘라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과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전 아프간 총리도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자리라방송도 카르자이 전 대통령 등이 탈레반 대표단을 만나기 위해 카타르 도하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카르자이 전 대통령은 미국의 아프간 전쟁 승리 직후인 2001년에 아프간 과도정부를 이끌었다. 이어 2004년과 2009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카르자이 전 대통령은 카불에 남아 사태 수습에 주력하면서 그가 향후 들어설 정부에서 역할을 맡을지도 주목된다.

유엔 안보리도 긴급회의를 열고 아프간에서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보리는 성명에서 탈레반이 포괄적인 협상을 통해 포용적이고 대표성을 갖춘, 여성이 참여하는 새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회의에서 아프간에서 여성 인권침해 사례가 늘어나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로이터통신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근래에 아프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G7 영상 정상회의를 열 용의가 있다며 말했다고 전했다. 존슨 총리는 올해 G7 정상회의 의장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에서 아프간이 과거와 같이 '테러의 성지'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에서 "아프간에 있는 테러 단체들은 불안정한 상황을 이용하려 들 것이고, 이는 국제 안보와 평화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보리 등 국제사회가 아프간 내 극단주의 세력에 대해 단결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같은 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탈레반의 아프간 재장악에 대해 "극도로 씁쓸하고 극적이며 끔찍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DW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파키스탄과 같은 주변 국가들에 대해 충분한 원조를 제공해 난민 수용을 도울 의사도 밝혔다. 아프간 난민의 추가 독일 유입을 막기 위해 아프간 주변 국가를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편 아프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한국대사관 직원들과 재외국민 1명은 17일 카불을 떠났다. 외교부에 따르면 아프간에 남아 있던 최태호 대사를 포함한 공관원 3명과 공관원 보호 아래 있던 재외국민 A씨가 탑승한 항공기는 이날 오전 9시(한국시간)께 카불 공항에서 이륙해 제3국에 도착했다. 이로써 아프간에 남아 있는 한국인 수는 '0'명이 됐다.

[한예경 기자 / 김성훈 기자 / 신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