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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철, 아내 위해 만든 히트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Jimie 2021. 7. 26. 21:55

[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가수 현철, 아내 위해 만든 히트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0.09.12 20:10

 

무명가수생활 그만두려고 1982년 마지막으로 만든 노래로 ‘대박’
꺾기창법, 구수한 목소리, 사투리 입담 인기…“가장 애착 가는 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이 없어라

가지 말라고 애원 했건만

못 본체 떠나버린 너

소리쳐 불러도아무 소용이 없어라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 없는 내 마음

가지 말라고 애원 했건만

못 본체 떠나버린 너

소리쳐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어라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 없는 내 마음

피할 길 없는 내 마음

 

가수 현철(본명 강상수)이 작곡, 취입한 노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은 남편이 아내를 생각하는 대중가요다. 현철의 출세곡으로 빅 히트곡이다. 4분의 4박자로 멜로디가 부드러우면서도 리듬이 차분하게 흐른다. 노랫말은 현철이 알고 지내던 부산지역 방송국의 김양화 PD가 썼다. 노래제목의 ‘당신’은 ‘현철의 아내(송애경)’ 를 말한다.


노래엔 숨은 사연이 있다. 현철의 아내를 빼놓을 수 없다. 현철은 무명가수시절 친구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등 어렵게 살았다. 결혼 후 10여 년은 가난의 연속이었다. 집을 13번이나 옮겼을 정도였다. 봉지쌀을 사다 먹고 겨울엔 낱장 연탄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마지막 이사 땐 철거민 입주딱지를 사 12평짜리 주택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했다.

 

가난해 물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식

 

현철 아내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옷가게, 카세트장사를 하면서 살림을 살았다. 그럼에도 부부싸움 한번 하지 않았다. 집안일이나 자녀문제로 다투거나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다. 꾹 참고 버텨준 아내, 늘 따뜻한 말로 토닥여준 남편이었다.

 

결혼 때 물 한 그릇 떠놓고 식을 올렸지만 둘은 사랑의 힘으로 고비를 넘겼다. 부산서 힘들게 산 현철은 어느 날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가요계를 떠나려고 마음을 정리했다. 고민 끝에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제목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평소 미안함과 사랑의 표시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1982년 아세아레코드사(대표 최치수)가 만든 ‘현철과 벌떼들’ 음반 앞면 여섯 곡 중 맨 위에 실렸다. 반응은 아주 좋았다. 현철은 TV방송에 자주 나가지 못해 ‘얼굴 없는 가수’였지만 노래는 인기였다.


이후 ‘사랑은 나비인가 봐’, ‘내 마음 별과 같이’, ‘들국화 여인’ 등도 줄줄이 터지며 1988년부터 3년 잇달아 KBS가요대상과 MBC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1989년 KBS가요대상을 받을 땐 무명가수시절의 설움이 생각 나 펑펑 울어 시청자들 눈시울을 적셨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히트덕분에 현철은 인기가수로 떠올라 생활이 풀리기 시작했다. 노래 삶을 접으려고 마지막으로 취입한 곡이 대박나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 그는 언론인터뷰에서 “정말 출세곡이 될 줄 몰랐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라고 말했다.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의 성공은 불가능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아내는 지금도 가끔 방송모니터를 하는 등 남편내조에 열심이다.


올 2월 1일 방송된 KBS ‘불후의 명곡’프로그램에서 현철은 가수 민우혁(본명 박성혁, 1983년생)이 부른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감회에 젖은 그의 모습을 본 관객과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했다.

 

1968년 ‘무정한 그대’ 부르며 가수 데뷔

 

현철은 1945년 6월 17일 경남 김해군 대저면 도도리 월포마을(현재 부산시 강서구 대저2동)에서 태어나 김해 대저중, 부산 동성고(9회), 동아대 경영학과(1965년 수석입학, 1966년 중퇴)를 나와 가요계에 뛰어들었다. 무명가수생활 20년을 합쳐 음악인생 반세기가 넘는다.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음악인이다.


그는 ‘울고 넘는 박달재’를 잘 불렀던 어머니의 노래소질을 이어받았다. “목소리가 독특하니 그쪽으로 한 우물을 파라”는 동료와 주변사람들 권유도 있어 노래콩쿠르에 자주 나갔다. 아들이 은행원이 되길 바랐던 부모로부터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의 아버지는 종묘장사를, 어머니는 5일 장터 좌판에서 씨앗을 팔곤 했다.


대학은 갔지만 끼를 못 버려 가수의 길을 걸은 현철의 노래처럼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1968년 ‘무정한 그대’를 부르며 가수로 데뷔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솔로가수 활동을 접고 1974년 부산에서 록 밴드 ‘현철과 벌떼들’(작곡가 박성훈 등 7명)을 만들었다. 팝송을 리메이크해 열심히 불렀지만 눈길을 끌지 못했다. 무명시절은 길었다. 1980년 ‘현철과 벌떼들’도 깨졌다.


1982년 다시 솔로가수가 돼 첫 취입한 노래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다. 40대 중반 햇빛을 본 곡으로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현철은 자신만의 주특기를 살리며 가요 팬들을 파고들었다. 구수한 목소리, 사투리가 묻어나는 입담, 편안한 느낌의 동네아저씨 같은 분위기로 점수를 높게 받았다. 민요풍이 더해진 구성진 꺾기창법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노래를 귀 기울여 들어보면 ‘도레미’ 음계 중 높은 ‘미’ 음에서 꼭 꺾어진다. 민요가락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할 때 끝 음이 살짝 올라가는 식이다.

 

아내와 1남 1녀…며느리, 사위 얻어

 

무명가수시절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1987년 리비아 대수로공사 현장공연을 갈 때였다. 현지근로자들이 고국의 아내가 보고 싶어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른 가수를 공연단에 꼭 넣어달라고 했다.


KBS방송팀은 현철을 조용필, 김세환, 주현미, 김연자, 현숙, 나미, 백남봉 등 인기스타들과 합류시켰는데도 얼굴이 안 알려진 그를 근로자로 알아 웃음 짓게 했다.


가난과 무명시절을 이겨낸 현철은 30년 가까이 인기를 끌며 성공한 가수로 우뚝 섰다. ‘사랑은 나비인가 봐’, ‘내 마음 별과 같이’, ‘청춘을 돌려다오’, ‘들국화 여인’,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아미새’, ‘싫다 싫어’, ‘잘 했군 잘 했어 메들리’, ‘항구 메들리’ 등을 발표하며 국내 대표 트로트가수로 우뚝 섰다.


현철은 ▷1988년 KBS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상 ▷1989년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1990년 KBS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상, 고복수가요제 대상, 제1회 서울가요대상 7대 가수상 ▷1999년 KBS 올해의 가수상 ▷2002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대통령 표창) ▷2006년 목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불교신자로 1남1녀를 뒀다. 며느리, 사위도 얻었다.


이 노래의 작사가 김양화씨는 일본서 태어나 부산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 출신이다. 1965년 부산MBC에 입사, 2004년 은퇴할 때까지 PD 겸 작사가로 여러 곡의 노랫말을 썼다. ‘눈물이 진주라면’(이미자), ‘사랑과 우정’(이상열), ‘별이 빛나는 밤의 부르스’(문주란), ‘낙엽은 지는데’(조영남), ‘별 하나의 진실’(높은음자리), ‘소라의 노래’(김하정), ‘내일이면 간다네’(유연실),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거야’(조덕배) 등을 작사했다. 가수 조용필을 대마초사건에서 일으켜 세운 대부로도 불린다. 2005년 회고록 ‘긴 세월 짧은 이야기’를 냈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여성소비자신문

 

현철(玄哲, 본명 : 강상수, 姜祥秀)은

1942년 음력 6월 17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사하면 신평리(現 부산광역시 사하구 신평동)에서 태어났다. 1961년에 부산동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동아대 경영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였지만 이듬해 자퇴하고 군에 입대하여 전역한 뒤 1969년에 《무정한 그대》라는 곡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그러나 현철이 데뷔할 당시에는 남진나훈아가 한창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에 현철은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1974년에 활동을 중단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서 음악 그룹 '현철과 벌떼들'을 결성하였고 그룹 리더로서 팝송을 리메이크 하면서 열심히 활동 하였지만 이 역시 큰 인기를 얻지 못해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다.

 

1980년에 그 동안 활동해오던 '현철과 벌떼들'이 해체되고 2년 후에 솔로로 전향했다. 전향과 동시에 그룹 시절에 활동했던 곡이자 아내를 향한 노래였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나 방송에 자주 출연하지 못하여 그때도 얼굴 없는 가수에 불과하였다. 1983년에 본격적으로 트로트로 성향을 바꾼 후 현철의 구성진 꺾기 창법과 뛰어난 가창력을 겸비하여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발표하였다. 1984년에는 1967년에 발표되었던 《청춘을 돌려다오》를 리메이크하여 활동했는데 이듬해인 1985년에 나훈아의 부탁으로 이 곡을 2명이 부르게 되어 더욱 히트하였다. 1987년에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에 공연을 갔었는데 당시 리비아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고국의 가족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공연 관계자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부른 현철을 인기가수 공연단에 포함시켰다. 이 노래는 2014년에 미래에셋대우의 광고 음악인 'Think you very much'에서 후렴구로 불리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 서서히 인지도를 높여가던 현철은 1988년에 발표된 《봉선화 연정》이 현철이 가수로 데뷔한 이후 가장 크게 빅히트를 치면서 이 노래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였다. 이 노래를 작곡한 작곡가 박현진의 말에 따르면 수상소감을 말하던 중에 20년의 무명 시절을 보낸 힘든 시절을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이 때부터 현철의 가수 생활은 역전되어 무서운 속도로 정상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1990년에 《싫다 싫어》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게 되어 2년 연속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정상급 가수로 성장하였다. 그 해에 문희옥과 함께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 《항구 메들리》로 혼성 듀엣 메들리를 발표하였다. 현철은 1988년부터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게 되어 침체되어 가던 트로트를 활성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종 가요부문상들을 휩쓸며 6년간 연속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고 그 중 1998년에 발표된 '사랑의 이름표'는 솔직한 가사와 구성진 트로트 리듬의 곡이며 그 해 한국 여론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부분에서 40대와 50대 선호도 1위를 기록하였다.

 

2002년에는 《아미새》를 발표하였으며, 이 곡은 다세대의 인기를 얻어 전국노래자랑에 초대 가수로 자주 출연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2010년에 제11회 대한민국 연예문화상 성인가요부문 대상,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발전공로 우정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노래로는 "사랑은 나비인가봐", "봉선화 연정", "싫다 싫어", "사랑의 이름표", "아미새" 등이 있다.

학력

 

현철과 벌떼들 -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 마음은 하나 (1982)

 

https://www.youtube.com/watch?v=26MqK0GSjWQ 

현철과 벌떼들 -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 마음은 하나 (1982.12.15)


1945년생 부산출신의 본명 강상수는 예명을 [태현철]로 하여 1969년 [무정한 그대]라는 곡으로 데뷔를 하였으나 주목받지 못하고 긴 무명생활을 보내다가 1979년 "현철과 벌떼들"이라는 보컬그룹을 결성해서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합니다.

"벌떼들"의 멤버로는 훗날 트로트계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작곡가 박성훈, 박현진을 비롯해 7명이었는데 활동을 하면서 한두명씩 빠지기 시작해서 이 앨범 발표할때쯤엔 쟈켓에 보이는 여성 멤버 한명만 남아 있었다고 하네요.

"현철과 벌떼들"이라는 이름으로 대여섯장의 앨범을 냈지만 역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드디어 이 앨범을 통해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앨범마저도 발표후 바로 히트했던게 아니라 몇년이 흐른후 [사랑은 나비인가봐]가 먼저 히트하면서 다른 곡들도 재평가를 받았던 앨범입니다.

수록곡 모두가 발표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곡들이지만 세월이 흐른 후 들어보면 다들 리메이크를 통해서 어느 정도 히트를 기록한 곡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