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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미인丁允姬

Jimie 2020. 6. 20. 09:45

'최고 미인’丁允姬

[선 넘는 일요일]

‘단군 이래 최고의 미인’ 정윤희의 ‘선데이서울’ 속 과거 모습은?

 

등록일 2020.06.17 재생수 46,563

장미희·유지인과 2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유명했던 정윤희.

‘단군 이래 최고의 미인’이라 불렸던 그녀의 과거 모습은 어땠을까?

단군 이래 최고의 미녀라는 말도 종종 들었고, 해외에도 유명해서 그녀가 일본 에 갔을 때는 일본 영화인 한 사람이

'일본 일류 여배우 100명을 합쳐도 정윤희의 매력엔 못 당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윤희장미희, 유지인과 더불어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의 일인으로 유명했다.

 

정윤희丁允姬

(본관 : 나주)

1954년 6월 4일 경상남도 통영 출생

 

 

1954년생으로 경상남도 충무시 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 으로 이사를 가서 그 곳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혜화여고 시절  정윤희는 빼어난 외모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당감초등학교, 혜화여자중학교, 혜화여자고등학교

 

'세상에 저렇게 예쁜 여자가 있나!'

'아름다운 여인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늘에서 별이 내려와 앉는다'

 

외국 시인의 시구절 처럼 얼굴도 얼굴이지만 각선미가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윤희는 교복치마 밑으로 곧게 뻗은 다리를 지녔고 윤희의 각선미를 능가하는 여자다리를 본 적이 없다는 여고시절 어느 학우의 회고~.

  

정윤희는 짙은 눈썹과 동그랗고 큰 눈, 오뚝한 코와 도톰한 입술이 잘 조화된 미모이다.

대중은 그녀를 고전미와 청순미를 두루 갖춘 미인으로 평가했다.

정윤희는 당시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미인으로 꼽혔고, 일본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미모라는 찬사를 받았다.

 

 

첫번째로 응시한 영화는 1974년 최고 흥행 영화로 유명한 별들의 고향

그러나 배우 경험이 없었던 정윤희는 여주인공 심사에서 탈락.

1974년 해태 전속모델이 되었다가 1975년 영화 <욕망>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당대 최고의 배우 김지미·윤정희가 거쳐 간 <청춘극장>의 주연을 맡게 된다.

 

나는 77번 아가씨(1978),  꽃순이를 아시나요(19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여자의 함정(1982) 등...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의 한 장면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0 대종상 여우주연상)

  

대자연도 숨죽인 强烈한 肉体言語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대종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1980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1981년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최우수연기상을 2회 연속 수상


 

'동양의 꽃'

정윤희의 별명이다.

그녀의 빼어난 외모는 일본과 대만에도 알려져 외국 감독들에게까지 러브콜을 받을 정도였다.

또한 '동경가요제'에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참석하여 영화 <러브스토리>로 알려진 알리 맥그로우와 함께 시상을 하기도 했다.

 "꽃순이를 아시나요?" (1979)

 

"꽃순이를 아시나요?"

 

 

 

 

"꽃순이를 아시나요?" (1979)

 

1984년 중앙건설 조규영 회장과 결혼하면서 은퇴하였다.

조 회장은 유부남이었고 당시 부인이 간통죄 로 고소해서 처벌받았다.

그 이후(1984년 12월) 조회장이 전 부인과 갈라서고, 정윤희와 재혼했다.

 

정윤희는 1993년 남편 회사 중앙산업의 가구 브랜드 '하이츠'의 TV광고 모델로 활동한 적이 있는 외엔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연예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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