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 5일만에 ‘오산 전투’… 71년째 전하지 못한 엄마의 편지
실종된 크레인 일등병
어머니의 편지엔 아직도 ‘행방불명'
박대헌 <최보식의 언론>논설위원
입력 2021.06.27 06:41
[크레인 어머니 편지] 6·25가 일어나고 24일 후 보낸 편지(1950. 7. 19). 한국전 참전 후 소식 없어 궁금하다는 내용. 이 편지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크레인은 이미 적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겉봉에 “missing(행방불명)”이란 표시로 반송되었다. 일반적으로 전투에서 행방불명의 경우 이런 표시를 하지만 대부분 포로로 확인된다.
6·25 발발 닷새째. 이미 서울은 북한군에 점령된 뒤였다. 1950년 6월 30일 맥아더는 일본에 주둔해있던 미 육군 제8군 사령부의 월턴 워커 중장에게 “24사단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7월 1일 이 보병사단 예하 제21연대 제1대대가 부산에 처음으로 상륙했다. 제1대대는 대대장 찰스 스미스 중령의 이름을 딴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Task Force Smith)’로 불렸다.
사흘 뒤 스미스 부대는 경기도 오산의 죽미령 일대 양쪽 고지에 방어 진지를 쳤고, 모두 406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뒤를 이어 한국으로 들어온 제34연대는 평택 및 안성에 각각 1개 대대씩 배치하였다.
7월 5일 한국에 들어온 지 닷새째 되는 날, 유엔군은 오산 북쪽 죽미령에서 처음으로 북한군과 교전하게 된다. 전사(戰史)에서는 이를 ‘오산전투’ 혹은 ‘죽미령 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수원을 점령한 북한군 제4사단이 아침에 107전차연대를 앞세워 스미스 부대를 공격해온 것이다. 이에 8시 16분 미군은 첫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그러나 무반동총과 로켓포는 적의 전차를 멈춰 세우지 못하였다. 스미스 부대는 첫 전투에서 150여 명 전사, 26명 실종이라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북한군 역시 비슷한 전력 손실이 있었다.
1950년 7월 6일, 오산 죽미령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미 육군 일등병 로버트 크레인의 마지막 모습.
미군 최초의 전투인 이 죽미령 전투' 현장에 일등병 로버트 크레인(Robert L. Crane)이 있었다. 그는 미국 아이오와 출신으로 1947년 미 육군에 입대했다. 이듬해 1948년 제24보병 사단 소속으로 일본에서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선발대로 투입됐던 것이다. 그가 죽미령 전투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한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1950년 6월 16일과 7월 19일에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중 두 번째 편지에는 ‘(한국전 참전 후) 아직까지 네 편지를 받지 못했다. 네가 어디 있는지 등 많은 것이 궁금하다. 이번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구나. 그 많은 나라에서 그 많은 군인들이 전장에서 싸우는데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편지들은 수취인 불명이었다. 편지 겉봉에 ‘missing(행방불명)’이란 스탬프가 찍힌 채 모두 반송돼 돌아왔다. 한국전쟁에서 아들의 행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 국방성 관계 자료에는 크레인은 1950년 7월 6일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3년이 거의 다 되도록 아들의 소식을 몰라 애태우던 어머니는, 어느 날 라이프지(誌)에 ‘포로 교환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미군들’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 사진 속에서 자신의 아들을 발견했다.
라이프지는 ‘이 사진들은 1950년 7월 20일 서울 근처에서 촬영되었다. 3년 동안 이 사진들은 숨겨져 있었으며 공산 세력 치하의 한국에서 밀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속 미군들은 24보병사단 19연대나 34연대 소속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크레인은 전사한 것이 아니라 오산 죽미령 전투에서 북한군 포로가 된 뒤로 지금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쟁 중 붙잡은 상대국의 포로 명단을 서로 통지해야 한다는 협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를 잘 이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휴전협정 시 포로교환 명단에도 크레인의 이름은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크레인의 유품은 1949년 크레인이 일본에서 그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1통과 생일 축하 카드 1통,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어 반송된 편지 2통, 크레인 사망 후 1953년 미국 보훈처에서 그의 가족에게 보낸 전사자 장례 등에 관한 안내 문건 1통, 국가유공자 가족을 위한 안내 문건 1통 등 9건의 문서, 크레인 또는 한국전쟁 포로 소식이 실린 신문 스크랩 8점 등 모두 18점이다.
크레인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잡지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빛바랜 잡지 속의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그녀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일등병 로버트 크레인. 미 육군 제24보병사단 34보병연대 소속, 군번 RA17186456, 1926년생, 1950년 7월 6일, 오산 죽미령 전투에서 적에게 포로로 붙잡힘, 당시 나이 24세, 그 후 생사불명.>
일등병 로버트 크레인!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더 많은 기사는 <최보식의 언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신용호 2021.06.27 07:06:03
오산이 고향인 저에게 죽미령, 스미스부대는 많이 듣고 가보았다. 이 나라의 존재는 우방국과 미국이 사라질 대한민국에 피를 흘려 선진한국이 된것이다. 기억하자 6.25전쟁 !
고명문2021.06.27 07:09:53
이방인도 타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이세상 어느것과도 바꿀수 없는 자기의 생명을 바쳤고 우리의 구국영웅이신 백장군님의 존재마져 부정하는 문재인 패거리들의 폭거...우리를 도와준 이방인과 우리의 전몰장병 여러분께 참으로 챙피한 나라가 됐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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