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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국 의장대원에 고개 숙여 인사를? 대통령의 사열 의전은…

Jimie 2021. 6. 20. 13:27

방문국 의장대원에 고개 숙여 인사를? 대통령의 사열 의전은…

신성대 <최보식의 언론> 논설위원

입력 2021.06.20 10:27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비엔나 호프부르크궁 발하우스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에선 김영삼 정권부터 문민정부라 부른다. 헌데 현직 포함 역대 문민 대통령 중 사열을 할 줄 아는 이가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에이, 설마...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인데 사열을 할 줄 모른다니 말이 되는 소리?’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엊그제 14일,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비엔나 호프부르크 궁 발하우스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동안 국빈 방문했던 여러 나라에서처럼 멀대 사열로 사람들을 내심 웃겼다. ‘뭐야? 사열도 안 해주고 그냥 지나가다니?’

 

‘사열(査閱, inspection)’이란 병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무장 상태를 점검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문명국가가 언제부터 ‘사열’이란 의례를 하게 되었는지 그 연원이 분명치는 않지만 현대적인 사열이 서구에서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

 

중세 유럽에서 적국의 사신이 왔을 때 대포에 실탄을 넣지 않았음을 확인해주기 위해 공포탄을 쏘는 것이 예포의 유래라고 하고, 또 국왕의 근위병들이 실탄을 장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소총을 앞으로 내밀어 검열을 받던 데서 사열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사신을 해치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외국 정상이나 사신을 맞이하는 환영 행사에서의 의장대 사열은 자신의 군대가 잘 훈련되었음을 자랑하기 위해 사열을 부탁(허락)하는 의미가 더 강하다.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비엔나 호프부르크궁 발하우스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열은 의장대 축하 쇼 구경이 아니라 일종의 소통 행위이다. 사열의 요령은 방문국 정상과 함께 또는 혼자서 의장대장의 인도를 받아 도열해있는 의장대 앞을 걸어서(때로는 무개차를 타고) 지나가며 무장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국빈 환영식 같은 의례적인 행사에서는 의장대원에게 다가가 일일이 확인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래서 바른 자세로 걸어가되 고개를 의장대 쪽으로 돌려 의장대원들과 피아노 건반 훑듯 눈 맞춤을 이어나가면 된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들은 이 간단한 요식행위가 안 된다. ‘사열’의 의미를 모르다 보니 패션쇼 모델처럼 의장대 앞을 멍하니 그냥 지나간다. 날 좀 보소? 의장대가 무서워 바로 쳐다보질 못한다. 누가 사열을 하고 누가 사열을 받는지 헷갈린다. 군대에 갔다 온 대통령이나 안 갔다 온 대통령이나 똑같이 멀대 사열이다.

 

그런데 곧 더 어이가 없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한국 대통령이 사열을 시작하기 전에 의장대를 향해 한국식으로 절을 한다. 또 사열 도중 기수대 앞에 멈춰서 기(旗)에 절을 올린다. 공손한 대통령?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는 한국인들에겐 그게 당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국제사회에선 완전 코미디, 난센스도 그런 난센스가 다시없다.

 

나라마다 국빈을 맞는 의전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방문국 국기나 군기를 향해 절하는 정상은 전 세계에서 한국 대통령밖에 없다. 국빈 환영 행사에서 원칙적으로 대부분 양국 국기를 단상 좌우에 따로 들거나 세운다. 약식 행사의 경우에는 의장대 기수대가 양국 국기까지 들고 의례를 진행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양국 정상이 단상에서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는데, 이때에도 자국기에만 예를 표한다. 상대국 애국가가 울리고 상대국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할 땐 가만히 서 있으면 된다.

 

환영식 마지막 순서로 사열을 하는 도중 기수대 앞에서 또 예를 표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당사국 정상은 기수대 앞을 지날 때 멈추지 않고 걸어가면서 거수로 자국기에 경례를 한다. 외빈은 그대로 사열을 계속하며 걸어간다. 혹 기수대가 태극기까지 들었으면 우리 대통령 역시 멈추지 말고 거수로 왼 가슴에 오른손을 갖다 대거나 경례를 하고 지나가면 된다. 단상에서 이미 국기에 대한 예를 표했기 때문에 굳이 멈춰서 예를 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느 나라든 국가최고지도자는 자국기에만 예를 갖추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축구 등 국제경기 시작 전 의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사열할 때 기수대가 태극기를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얼른 살펴야 한다. 그런다고 태극기에 절을 하는 건 아니다. 한데 한국 대통령은 사열 도중 멈춰서 태극기가 서 있든 없든 절을 바친다. 당연히 세계인들은 그런 광경을 보고는 ‘왜 의장대한테 절을 하지?’ ‘웬 묵념?’하며 의아해 할 수밖에 없겠다. 대통령은 묵념할 때 외에는 고개 숙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의장대에 일체 답례를 하지 않는다. 다만 사열을 마친 후 안내를 한 의장대장이 경례를 올릴 때 “훌륭하다!”는 표시로 눈 깜빡, 고개 살짝 까딱해주는 정도만 허락된다. 물론 그마저 표하지 않아도 무례가 아니다. 한데 한국 대통령은 사열을 시작하기 전이나 마친 다음에도 정중하게 절을 한다. 일국의 정상이 방문국 졸병들에게 고개 숙여 절을 하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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