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고별( 告別 )의 노래

Jimie 2021. 6. 19. 08:17

 

조두남(趙斗南, 1912년 ~ 1984년 11월 8일)은

1912년 평양의 개화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 출신 신부, 조지프 캐논스(Cannons, J.)에게 서양 음악과 작곡을 배웠다.

11세이던 1923년에 가곡 〈옛이야기〉를 작곡해 작곡가로 데뷔했을 만큼 자질을 보였고, 17세 때 첫 가곡집을 발간했으며, 21세 때 가곡 〈선구자〉를 작곡했다.

만주. 용정 등지에서 활동,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서울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6·25전쟁으로 마산에 피난하여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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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타계하기 얼마 전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전갈을 받은 시인 정목일은 부랴부랴 댁을 방문했다.
시인은 당시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댁에 자주 드나들어 어느덧 정이 들어 있었다.

 

마산만이 바라다 보이는 아파트 거실에는 달빛이 밀려들었고 오랜 투병생활로 수척할 대로 수척해진 선생은 앙상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 두 손을 잡으며 시인을 맞았다. 백발에 주름진 얼굴, 깊게 패인 두 눈에는 외로움과 어떤 간절함이 뒤섞인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때 시인은 노작곡가를 바라보며 마음 속 빌고 있었다.

“부디 이 작곡가에게 마지막 불멸의 명곡을 남길 기회를 허락해 주십시오….”

시인의 마음속에서 ‘선구자’의 노래가 울리고 까닭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

조두남 선생이 젊은 시절, 만주 용정에서 지낼 때, 한 젊은이가 불쑥 찾아와 이 시를 내 놓으며 작곡을 부탁하고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곡이 완성되고 온 겨레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건만, 그때의 젊은이는 영영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술회하던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몇일 후 선생은 운명하였고 마산의 한 성당에서 그가 남긴 ‘선구자’와 ‘그리움’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결식이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LNMOG2f2YU

 

조두남 선생이 자신의 임종을 알고 미리 제목까지 써 두었던 곡 "고별( 告別 )"
정목일 시인이 선생에게 헌정하는 시 '고별( 告別 )의 노래'

 

 

조두남 선생의 유작에

정목일 시인이 사연을 얹어 ... ... ...

 

윤원주 소프라노가 고별( 告別 )을~~~

 

마음속 별떨기 새겨진 사람,

그리운 은피리 흐르는 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m67Tza80um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