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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홍위병의 사퇴 압박… 한명은 버텼다는 기록 남기고 싶었다”

Jimie 2021. 5. 3. 08:58

“언론 홍위병의 사퇴 압박… 한명은 버텼다는 기록 남기고 싶었다”

[신동흔이 만난 사람] KBS 이사 해임 무효 소송 2심 승소 강규형 명지대 교수

조선일보 신동흔 기자

입력 2021.05.03 03:00 | 수정 2021.05.03 03:00

 

“정권이 바뀌고 ‘홍위병’들 난동에 굴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강규형(57)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과 싸워 두 번 승소했다. 이제 마지막 3심을 남겨둔 상태. 그는 2017년 12월 KBS 이사에서 해임된 직후,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6개월 만인 작년 6월 1심 법원(행정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줬고, 지난 4월 28일 2심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특히 2심 재판부는 강 이사의 해임에 대해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명확하게 판시했다.

 

강규형 전 KBS이사는 2017년 12월 KBS 이사에서 해임된 이래 4년째 외로운 법정 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그는“언론노조를 앞세운 홍위병식 방송 장악 과정에서 누군가 한 명은 끝까지 버텼다는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고운호 기자

 

강 교수는 “당시 KBS 및 MBC 이사진 교체의 본질이 ‘방송 장악’이었음이 분명해졌다”면서 “서슬 퍼런 정권 앞에서 우파가 얼마나 맥없이 무너졌는지,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가려졌다”고 했다. 역대 정권은 권력이 바뀔 때마다 전리품처럼 공영방송을 챙겨왔지만, ‘강규형’이라는 사례가 추가됨으로써 앞으로는 방송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기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갖게 된다. 4년째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는 지친 표정이었다. 32인치였던 허리가 36인치까지 불었고, 얼굴도 몹시 푸석푸석했다. 물어보니, “스트레스로 인한 대사 증후군으로 고생 중”이라고 했다.

 

홍위병들과의 싸움, 무슨 일을 겪었나

 

–KBS와 MBC에서 물러난 이사들은 당신 말고도 있었다. 왜 혼자 싸움을 하나.

“당시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의 대주주) 이사 3명이 물러났다. 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및 MBC본부 조합원들이 일부 이사들의 직장인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다니는 교회 인근에 비방 벽보를 붙이는 등 집단 린치에 가까운 일을 벌였다. 다들 가족과 직장,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둘 사퇴했다. 자진 사퇴한 이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었다. 반면, 나는 해임됐기 때문에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을 겪었나.

“나만 버티고 있으니 학교로 집으로 노조원들이 들이닥쳤다. 강의실로 쫓아오고, KBS노조가 학생들의 교내 집회에 참여해 나를 비방했다. 우리 집 앞에 잠복해 가족들이 왔다 갔다 하는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다.”

 

–가족들 사진은 뭐에 쓰려고.

“출력해 레스토랑이나 카페 같은 곳에 보여주고 나 말고 가족들이 카드 사용한 것 없는지 물어보고 다녔다더라. 당시 조선일보 취재에서도 이런 행태가 밝혀졌었다. 언론노조원인 KBS 기자들이 이야기하자고 와서 만났는데, 강의실 밖에 몰래 카메라 설치하고 녹음기를 옷 안에 숨긴 일까지 있었다. 불법 채권 추심 업체들도 이런 식으로 사람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들은 어땠나.

“집안 형제들이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너무 컸다. 친가 가족들은 ‘젊어선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고 이제 막내 때문에 이 고생 해야 하나’라고도 했다.”

 

강 교수의 부친은 육사 8기로 한나라당 의원과 총재 권한대행을 지낸 고(故) 강창성 의원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하나회의 존재를 처음 알아냈고 군벌 정치를 비판하며 5공화국을 출범시킨 신군부와도 내내 불화(不和)했던 인물이다. 강 교수 스스로 “솔직히 ‘깡’[강단]으로 버텼다. 그런 기질은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것 같다”고 했다.

 

–왜 그렇게 집요하게 당신을 쫓아내려 했다고 생각하나.

“KBS 사장을 바꿔야 하는데, 이사 2명만 쫓아내면 이사회에서 수적 우위를 점해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니까. 여당에서 흘러나온 이른바 ‘방송 장악 문건’에 나오는 대로 정부는 직접 나서지 않고 KBS MBC 언론노조원들이 나섰다. 내가 ‘홍위병이 따로 없다’고 비판하자, KBS 노조위원장은 ‘우리는 국민의 홍위병’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자신들만 정의롭다고 착각해 집단 광기에 빠져 난동을 피운 홍위병과 다를 바 없는 행태였다.”

 

–불과 8개월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다. KBS가 주간 방송사인데, 당시 ‘대통령이 앉는 VIP석에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이인호 KBS 이사장과 고대영 사장이 앉는 장면이 나와선 안 된다’는 말이 파다했다. 지방선거도 앞두고 있어 다급했을 것이다.”

2017년 9월 강규형 당시 KBS이사가 KBS노조원들이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고운호 기자

 

법원에서 모두 무효가 된 해임 사유

 

강 교수는 이사 업무추진비(법인카드)의 사적인 사용, 폭행 사건 연루 등으로 인한 KBS 이사로서 명예 실추 등을 이유로 해임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청문회까지 열어 해임을 건의하고 대통령이 재가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해임이 무효’라고 낸 그의 손을 들어줬다. 해임 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승소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는 겉으로는 ‘방송 장악하지 않겠다’ ‘꼼수 쓰지 않겠다’ 하면서, 뒤로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정권이었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정권을 대신해 행동에 나섰던 언론노조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재판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변곡점은 무엇인가.

“감사원의 정기 감사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던 일이 나를 잡기 위해 기준을 바꿔 새롭게 감사를 벌이자 이번에는 KBS 이사 11명이 모두 법인카드 사용에 문제가 있다는 해괴한 감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나만 찍어 배임으로 걸고 해임 사유에도 포함시켰다. 법원은 이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또 내가 안산의 도그쇼에서 방송 장악과 관련된 폭행 사건에 연루된 건도 있는데 이것도 명예 실추로 해임 사유에 넣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법원에서 민형사 모두 상대방이 폭행 상해 유죄, 내가 오히려 피해자로 판명 났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무리하게 해임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4년, 잔치는 끝났다

 

–당신을 해코지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접한 일도 있나.

“집단 속에 있을 때는 극악한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겁이 많다. 그것은 비겁한 행동이다. 그런데도 무리를 지어 달려들 때는 잔인해지는 경향이 있다. 군중심리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기자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내게 가장 심하게 행동한 사람 중 한 명이 있다. 2심 판결 나고 4년 만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니, ‘원하시던 결과 받으셔서 다행입니다. 저는 늘 제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4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그만 과거로 흘려보내셨으면 합니다. 다음번에는 좋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라고 답이 왔다. 과거는 잊어주세요라는 낯 뜨거운 멘트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이제 이겼으니, 끝난 것 아닌가.

“나는 아직 안 끝났다. 명예훼손 소송, 민사도 남아 있고, 법인카드 사용 건도 전체 11명 이사들 중 언론노조가 고발한 야권 이사가 네 명이었는데 다 취하하고 나만 남긴 건이 아직 있다. 이건 ‘리걸 허래스먼트’(legal harassment)다. 개인은 죽을힘으로 버티고 있는데, 거대 방송사와 권력이 한 개인을 죽이겠다고 덤비고 있다. 역사상 최악의 방송을 만들어 놓고, 적폐 청산이니 진실과미래위원회니 하면서 조직을 망쳐놓고, 과거로 흘려보내자니… 뻔뻔하기 그지없다. 이제 잔치는 끝났고, 잔치에 대한 계산서가 날아올 것이다.”

 

–힘들었을 텐데, 왜 버텼나.

“한 명이라도 버텨 역사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버틴 덕분에 해고가 미뤄진 사람도 있고 실질적 성과도 거뒀다. 정권 교체 직후 전광석화처럼 적폐청산 기구인 MBC정상화위원회 만들고 이른바 ‘부역자’ 찾아내 징계하고 쫓아낸 MBC와 달리 KBS는 적폐청산 기구인 ‘진실과미래위원회’(위원장 정필모 당시 KBS 부사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결성이 상대적으로 늦어진 때문이었다.”

 

인권 문제로도 비화할 수 있어

 

–소송 처음 시작할 때 어떤 심정이었나.

“상대방은 1심에서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도 거론됐던 이광범 변호사가 지휘하는 호화변호인단을 구성했다. ‘법리로는 이길 확률이 100%이나 현실 여건상 패소 확률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소송 비용도 개인으로선 큰 부담이다. 해임 무효 소송 외에 다른 소송도 많다. 1억원 이상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부었던 연금 보험 두 개를 깼다. 나중에 연금 좀 덜 나와도 지금 승부를 걸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소송이 많고 길어지고 있나.

“나를 집중적으로 고소하는 세력이 있다. 악착같이 고소해 경찰서 가고 법원 가고, 괴롭게 만든다. 한 개인에게 이들이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군중이 합법을 가장한 모습으로 한 명 한 명의 개인에게 굴복을 강요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거기에 굴하기 싫다.”

 

–최근 국제적인 인권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미국 하원 인권위원회가 지난 15일(현지 시각) 한반도인권청문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언론 탄압 사례로 내 케이스를 들었다. 고든 창 변호사가 증언하면서, 문 대통령이 민주주의적 제도를 직간접적으로 공격한 사례 중 하나로 KBS 이사였던 나를 가혹한 방법으로 인권 탄압하며 ‘숙청’(purge)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리 소테쓰 조선족 출신 일본 대학 교수도 나의 사례를 한반도 문제를 다룬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모두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왜 이렇게 무리한 일들을 벌였다고 생각하나.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자신들은 법과 절차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움츠려든다. 그렇게 정권과 언론노조는 얻을 것을 다 얻었다. 양심이 있으면 3심까지 가지 않아도 될 텐데, 또 대법원까지 가서 국민 세금 낭비할 것이다. 자기들이 그렇게 불법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면 아주 작은 대가라도 지불해야 할 텐데 그것도 안 하겠다는 용렬함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50대 중후반 내 인생의 전성기를 소송과 투쟁으로 보내고 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쳤다. 아내가 나한테 ‘4년 전에는 부드럽고 고뇌하는 면모가 있었는데, 지금은 분노하고 예민해졌다’고 하더라(웃음). 이제는 일상으로 복귀가 내 목표가 됐다. 줄줄이 걸려 있는 소송 건도 확실하게 마무리 지을 것이다. 내 인생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대에서 러시아사·20세기 서양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운영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소위 종족주의적 역사관을 탈피한 국제 관계사로서 한국 현대사를 바라볼 것을 주창해왔다. ‘좌편향 역사 교과서’ 문제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9월 당시 여당(현재 국민의힘) 추천으로 KBS 이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