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78년 vs 다가올 78년 [코리아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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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는 광복 78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78년동안 대한민국은 서구(西歐)의 3세기에 걸친 경제·사회 변화인 산업화·도시화·민주화·세계화·디지털정보화를 이뤘습니다. 상당수 국민이 후진국 어린이로 태어나 중진국 직장인으로 활동하다가 선진국 시민으로 은퇴하는 모습은 ‘지금 한국인’이 세계에서 유일합니다.
‘한국 현대사는 위대한 전진의 역사였다’는 인식 아래 저는 3년째 [송의달 LIVE]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否定)과 북한·중국 떠받들기가 한창이던 2021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3회 연속 집중조명했습니다.
◇해방 후 78년과 ‘위대한 전진’
우남(雩南) 이승만이 없었으면, ‘자유 대한민국’ 탄생은 불가능했습니다. 해방 직후 정당, 사회단체, 관공서, 학원, 산업체 등 남한의 거의 모든 분야를 좌익이 지배하거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46년 8월 미 군정청의 ‘지지하는 이념’ 설문조사에서 ‘자본주의 14%, 공산주의 7%, 사회주의 70%’라는 응답이 이를 웅변합니다.
조선공산당(남로당)은 1945년 10월 이승만이 귀국하자 내각 ‘주석’으로 추대한 뒤 “위대한 지도자에게 충심의 감사와 만강(滿腔)의 환영을 바친다”는 환영성명을 냈습니다. 좌우익은 모두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추앙했습니다. 실제로 이승만은 1948년 7월 국회에서 실시된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196명 중 180명의 지지라는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습니다.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 8월, 전국 남녀 2003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가장 많은 44%는 박정희를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으로 꼽았습니다. 이는 5·16과 10월 유신의 본질과 지향점을 많은 국민이 긍정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5·16 한 해전인 1960년 경제성장률(2.3%)은 1959년(5.2%)의 절반에도 못 미쳐 나라 전체가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반공(反共)’과 수천년에 걸친 가난 탈출을 기치(旗幟)로 내건 박정희는 성과를 냈습니다. 1962년 127억달러이던 국민총생산(GDP)은 1980년 574억달러로, 1964년 1억달러이던 수출액은 14년 만인 1978년 100억달러로 각각 4.5배, 100배 늘었습니다.
◇“박정희는 이승만의 실질적 후계자”
그런 측면에서 “이승만의 실질적 후계자는 박정희”가 맞습니다. <박정희가 옳았다>의 저자인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은 “박정희의 수출입국 전략은 이승만이 29세이던 1904년 쓴 <독립정신> 후록에서 갈파한 ‘세계와의 통상(通商)이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근본이다’를 구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고 했습니다.
소설가 복거일 선생도 “박정희 경제정책의 상징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승만이 마련한 경제개발 3개년 계획에 바탕했고, 한국의 안보와 경제의 근간이 된 일본과의 수교는 ‘평화선’이라는 결정적인 협상의 패를 이승만이 따놓은 덕분”이라며 동일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승만·박정희 두 지도자 덕분에 1960년 1인당 국민소득 79달러의 ‘거지 나라’ 한국은 1994년 1만달러 국가를 넘어 3만달러(2017년) 고지까지 올랐습니다. 1963년부터 1997년까지 34년간 한국이 세운 연평균 9.1% 경제성장률은 세계사에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록입니다.
◇도약이냐 소멸?...갈림길에 선 코리아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단군 이래 최전성기인 대한민국이 한번 더 도약하는 승리자, 또는 국가 해체·소멸이란 패배자의 길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80년여 지속된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대변동, 중국·러시아·북한 등 전체주의 세력의 준동(蠢動), 북한의 실존적인 핵 위협 같은 외부 환경부터 험악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최악의 수도권 집중, 14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같은 문명사 초유(初有)의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출산율이라면 2100년 한국은 인구 2400만명에 중위(中位)연령 59세의 ‘노인 국가’가 됩니다. 김영삼 이후 6명의 대통령에 모두 적용된 ‘5년마다 1% 장기성장률 하락’이 지속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런 비극을 막고 ‘코리아 부흥’의 문(門)을 열 방책(方策)이 시급합니다.
◇①엘리트들의 세련된 국가경영술
여기서 우리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소환하게 됩니다. 지금보다 훨씬 엄혹한 고립무원(孤立無援) 처지에서 불굴의 의지(意志)로 건국·경제 발전이란 시대정신을 실천한 두 사람은 살아있는 국정 운영 교본입니다.
1970년 7월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만 해도 야당·언론·대학교수들에 세계은행까지 “불가능, 불필요”를 외치며 극력 반대했습니다. 오직 한 사람, 박정희의 ‘외로운 결단’이 나라의 진운(進運)을 바꾸었습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그의 발언에 고뇌의 일단이 배여 있습니다.
하지만 40여년 전은 지금 리더들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보다 3~4배 이상 고민하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더 이상 벤치마킹할 선진국이 없고, 그 누구도 여태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도전해 해답을 만들어야 하는 숙명(宿命)을 안고 있어서입니다.
그럴려면 5000만명 총인구 중 5만명에 이르는 최상위 0.1% 엘리트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는 “한국 엘리트들은 선진 열강 엘리트들만큼의 지식 수준, 전문성, 도덕성,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와 현재에 대한 치밀한 분석, 강인한 연마와 끊임없는 학습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명사적 과제 앞에서 엘리트들의 각성과 집단지성이 긴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는 “한국 우파는 ‘진짜 정치’를 한 적이 없다. 우파 집단은 세련된 국가경영술(statecraft)로 좌파 보다 ‘탁월한 정치’를 하는데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②국민 역량 모으는 ‘강대국’ 국가 비전
한국의 지도층이 눈앞의 정권 유지 또는 정권 획득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그들은 국망(國亡)을 초래한 임진왜란 직전과 구한말 대한제국 지도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5년 단임제라는 한계가 있지만, 엘리트층과 국민을 하나로 묶고 국가 역량을 결집하는 중장기 대한민국 비전(vision)은 그래서 더 절실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난 세대(世代)가 산업화·민주화·세계화의 숙제를 풀어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를 만든 것처럼, 현재 한국의 주류(主流) 세대는 ‘강대국(强大國)’이라는 시대의 비전을 실현하기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사실 ‘강대국이 되겠다’는 비전을 거의 품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글로벌 중추 국가 또는 중견국가라는 모호한 개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 마음속에는 강대국이 되고픈 열망이 있습니다. 최근 10년 경제·문화 분야에서 한국인들이 보인 성취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내면화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2030 세대의 경쟁력은 세계 어느 나라 청년에 뒤지지 않습니다. 강대국 비전과 이를 위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제시하고 끌고 가려는 지도층이 없을 뿐입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가 강대국이 못 되면 중국, 미국과 같은 거대 플랫폼 시장의 하위 경제 또는 속국이 돼 급격히 사회 동력을 상실할 위험이 크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의 G7 국가는 모두 시장·기술·산업 강대국이다. 현대 세계정치에서 강대국이 되는 문법은 시장·기술의 승리이다. 한국 지도층은 인공지능(AI)·반도체·배터리·퀀텀 컴퓨팅 같은 최첨단 분야 초(超)격차 기술 확보에 힘을 쏟아야 한다.”
◇③존경받는 지식인들과 知力 상승
‘피크(peak) 코리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데도, 대한민국은 이성(理性) 보다는 감성(感性), 윤리보다 인기, 깊이 보다 자극을 선호하며 먹방과 술, 가무(歌舞)에 탐닉하는 이른바 ‘예능국가’로 돌진하고 있습니다. 지식인들조차 깊이 있는 공부와 글쓰기 보다 소셜미디어(SNS)에 빠져 세계적 수준의 고급 학술서나 콘텐츠가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이는 대학교수와 연구원·전문가·언론인을 포함한 한국 지식인 사회가 철저한 직업 정신(職業精神)의 끈과 지적(知的) 긴장을 놓아 버리는 탓이 큽니다. 예능국가의 부작용을 견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 할 지식인들과 언론계가 예능화 흐름에 동조하면서 자극과 인기, 감성과 재미를 앞세워 가볍고 왜곡된 정보 범람에 오히려 앞장서는 형국입니다.
그 결과 선동과 포퓰리즘, 다수결로 포장한 정치 집단의 떼쓰기가 횡행하고 통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질화(低質化)’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홍승기 인하대 로스쿨 교수는 “지식인들이 품격있는 고급 콘텐츠와 텍스트 생산이라는 본분에 충실하며 지력(知力) 상승을 주도해 사회의 중추(中樞)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노력이 축적될 때,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하고 이끄는 핵심 엘리트들이 나올 것입니다. 지금처럼 법과 윤리를 무시한 채 인기(人氣)와 팬(fan)심만 바라보는 ‘예능 정치’와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전술에만 몰두하는 ‘가벼운 정치’가 계속된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양명(王陽明)은 “천하가 어지러운 것은 학자들이 공부를 안 한 탓이다(天下不治 學文不立)”고 했습니다. 지식인이 약해지면 나라가 붕괴한다는 경고입니다.
◇지금부터 2100년까지 ‘새로운 78년’
최근 서구에서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야(It’s not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K-팝, K-영화, K-드라마가 세계적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에도 들어맞는 지적입니다. 공동체의 위기 극복을 위한 출발점은 정치(政治)라는 인식에서입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품격과 인성(人性) 결핍증이 심각한 정치사회 풍토의 개선 없이는 대한민국의 선진화는커녕 국가 경쟁력 강화도 어렵다”고 단언합니다. 김진현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새 정치, K-정치가 대한민국 개벽의 첫길”이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정치인은 외교·안보·경제·과학기술·교육·노사·사회 구조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지식과 소양을 갖추고 국가기능을 종합조정할 수 있는 정치로의 대전환을 꾀해야 한다.”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 지금의 대전환기가 ‘한국 쇠퇴론’을 떨쳐내고 제2의 도약을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대한민국은 동서양 문명 융합에 매우 유리합니다. 성리학(性理學)을 중국보다 더 발전시킨 우리나라는 동양에서 예외적일 정도로 많은 기독교 인구를 갖고 서양 문화와 제도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왔습니다.
한국 현대사는 개방과 혁신·기술력으로 험난한 과제를 이겨내는 특유의 DNA가 한국인에게 있음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먹고 제대로 힘을 낸다면, 세계 중심(中心·core) 국가 진입은 헛된 꿈이 아닙니다. 25년 뒤 대한민국 정부 수립 100주년과 그 이후에도 더 강대하게 부상(浮上)하는 코리아를 상상해 봅니다. 2100년을 향한 새로운 78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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