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지구의 배꼽과 롱고롱고(Rongorongo) 서판(書板)A lithic site near Ahu Te Pito Kura, Easter Island

Jimie 2024. 5. 14. 04:22

지구의 배꼽과  롱고롱고 서판(書板)

지구의 가장 외진 절해고도- 이스터 섬

 

1888년 이래 칠레공화국의 영토가 된 이 섬은 에스파냐 말로 ‘이스라 데 파스크와(파스크와섬)’가 공식 명칭이다. 섬 원주민들 사이에선 ‘라파누이(큰 섬)’로 불렸으며

 

옛부터 전해오는 이름은 ‘테 피토 테 헤누아’ ‘지구의 배꼽’이란 뜻이다.

이 말은 옛날 폴리네시아인들이 최초로 이 섬을 발견했을 때 붙인 이름이다. 먼 바다에서 이 섬을 본 사람들이 화산에서 뿜는 연기가 하늘과 섬을 한줄기 탯줄처럼 연결하는 광경을 보고 지었을 것으로 보인다.

 

 

The Navel of the World or Earth

지구의 배꼽

A lithic site near Ahu Te Pito Kura, Easter Island

아후 테 피토 쿠라 부근의  돌 유적지

과거 원주민들은 이스터섬을 지구의 배꼽으로~. 지금도  지구의 배꼽을 표시하는 상징물이 있다.

Easter Island and the islands between it and South America.

 

Easter Island  Rapa Nui  in Chile

칠레의 이스터 섬(라파누이:큰 섬)

 

 

Easter Island (officially Isla de Pacua) is located in the South Pacific Ocean,

 

이스터 아일랜드(공식적으로 "이스라 데 파스쿠아; 파스쿠아 섬(이스터 섬, 부활절 섬)는 남태평양에 있는 화산 섬.

화산석으로 조각한  900여 모아이(Moai 3~ 8미터)상이  대양을 바라보는 것으로 유명한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섬.

 

타이티섬에서 4000킬로미터, 하와이에서 8000킬로미터, 호주에서 9000킬로미터, 칠레에서 3800킬로미터 떨어진 지구상 가장 외딴 섬이다.

 

Discovered by the Dutch in 1722, Easter Island was first named Paaseiland (translated as "Easter Island") and was taken over by Chile in 1888.

1772년 부활절(이스터)에  네델란드에 의해 발견되어  이스터 섬으로 불려졌으며  1888년 칠레에 귀속됨

 

The island has a total area of 163,6 km2 (63,2 mi2) and population around 6,600.

면적 163.6 km2, 인구 6,600명

 

삼각형 모양의 섬, 각 꼭짓점 부근에는 화산이 있다.

 

 

Easter Island ( Rapa Nui )  in Chile

Hanga Roa is the island's port town with population around 3,500 (~90% of the total population).  

항가 로아는  전체 인구의 90%인 3,500명이 거주하는  항구이다.

In 1995, Easter Island was designated a UNESCO Site, with much of its territory protected within Rapa Nui National Park.

1995년 이스터 섬은 라파 누이 국립공원내의  '보호구역'을 유네스코 사이트로 지정되었다.

 

 

거인군단 모아이가 지키는 이스터섬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고도 이스터섬에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400년경부터 거대한 조각상 모아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수천 킬로미터 바다를 저어 섬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모아이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빨간 모자를 쓴 모아이

독특한 형태 때문에 모아이의 빨간 모자가 우주인이 썼던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어 있는 태평양의  작은섬에 현대인을 경탄케 하는 ‘모아이’라는 거대한 석상들이 바다와 내륙을 향해 어지러이 놓여 있다. 모두 900여 개지만 400여 개만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키가 3 ~ 8 미터에 달하고 무게가 20톤 정도이다. 큰 것은 키가 22미터에 무게가 150톤에 이르는 것도 있다. 대부분 400~1680년에 만들어졌지만 11세기경에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Outer slope of the Rano Raraku volcano, the quarry of the Moais with many uncompleted statues.

라노 라라쿠(Rano Raraku) 화산의 외부 경사면, 미완성 조각상이 많이 있는 모아이(Moais) 채석장.

 

Ahu Tongariki, the 15 moai statues

After being knocked down by a tsunami in 1960, the 15 moai perched on Ahu Tongariki were restored a few decades later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 15개의 모아이 석상

1960년 쓰나미로 인해 무너진 후,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에 자리잡은 15개의 모아이는 1990년대 복원되었다.

 

Easter Island, a Chilean territory, is a remote volcanic island in Polynesia. Its native name is Rapa Nui. It’s famed for archaeological sites, including nearly 900 monumental statues called moai, created by inhabitants during the 13th–16th centuries. The moai are carved human figures with oversize heads, often resting on massive stone pedestals called ahus. Ahu Tongariki has the largest group of upright moai. ― Google

 

칠레 영토인 이스터 섬은 폴리네시아의 외딴 화산섬이다. 원래 이름은 라파 누이(Rapa Nui).  이곳은 13~16세기에 주민들이 만든 모아이(Moai)라고 불리는 약 900개의 기념비적인 조각상을 포함하여 고고학적  유적지로 유명하다.

 

모아이는 지나치게 큰  머리를 가진 조각 - 인간 형상으로, 종종 아후스(ahus)라고 불리는 거대한 돌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에는 직립형 모아이의 가장 큰 그룹이 있다.

 

 

RANO RARAKU - The moai statue quarry 

라노 라라쿠- 모아이 상  채석장

 

Hanga Roa  seen from Terevaka, the highest point of the island

섬의 최고 정점 테레베카에서 보이는 항구 항가 로아

 

All fifteen standing moai at Ahu Tongariki, excavated and restored in the 1990s

1990년대에 발굴 복원한 '아후 통가리키 15 직립 모아이 상'

 

Osterinsel, Hanga Roa Hafen mit Moai Ko te Riko

(독일어)

이스터 섬, '모아이 코 테 리코'가 있는 항가로아 항구

 

 

The rongorongo script of Easter Island.

이스터 섬의  롱고롱고 목판(木板)

 

화목으로 쓰고 남은 21장의 목판

 롱고롱고(書板)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발견된 최초의 문자 기록인 롱고롱고(書板)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학자들은  ‘말하는 목판(롱고롱고)’에 더 주목했다.

이 목판은 남태평양 섬들에서 최초로 발견된 원주민 문자이기 때문이다.

 

이 목판에 관심을 가졌던 최초의 유럽인은  프랑스 선교사인 외젠 에이로 신부였다.

그가 1860년대에 이 목판을 발견했을 때 이스터섬 주민들은 섬의 역사를 풀어줄 열쇠인 목판들을 장작으로 불 때고 있었다.

 

노예상들이 섬의 지도자들을 살해하거나 노예로 팔았기 때문에 이 목판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에이로 신부가 목판의 중요성을 간파했을 때는 겨우 21매의 목판만이 남아 있었다. 

 

 

1953년 독일의 토마스 바르텔이 목판 해석에 도전했다. 그는 이 목판에서 약 120개의 기호가 그 자체로서 완결되는 단어 또는 사상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독을 하려면 어떤 단서가 있어야만 했다. 그는 지난 세기에 이스터섬을 탐험한 프랑스의 테파노 조상 주교의 이야기에서 단서를 찾았다. 조상 주교는 젊은 시절 타히티섬에 갔다가 그곳에서 전문적 영창자(롱고롱고 부르는 사람) 훈련을 받았다는 이스터섬 출신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바르텔은 조상이 준 영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조상 주교가 적은 몇 줄의 폴리네시아 문자가 나의 로제타석이 되었다. ······ 처음 몇 문장의 의미가 풀리기 시작했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1960년부터 바르텔은 목판의 해석을 발표했다. 목판의 내용은 대부분 신에 대한 기도, 성직자의 말씀, 섬의 신화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글의 줄(行)이 마치 밭고랑이 만들어질 때처럼 연결되며 줄이 바뀔 때마다 거꾸로 새겨져 있어 매번 판을 돌려 읽어야 하고 이런 서법(書法)은 수마트라에서 마르케자스제도에 이르는 남태평양의 다른 섬들에서도 발견된다고 했다. 일부 학자들은 그의 번역이 신뢰성을 얻기에는 목판의 숫자가 너무 적다고 격하했다. 하지만 바르텔은 그 문자가 폴리네시아인 방랑자들에 의해 개발되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