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여자 큰 배움터에 들렀다가
배꽃에 월백하니...
梨花에 月白ᄒᆞ고 銀漢이 三更인 제
一枝春心을 子規야 알건마ᄂᆞᆫ
多情도 病인 양ᄒᆞ야 ᄌᆞᆷ 못 드러 ᄒᆞ노라
- 이조년 -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자규 子規 "*는 두견새를 가리키는데
소쩍새. 두백(杜魄). 불여귀(不如歸). 망제혼(望帝魂). 귀촉도(歸蜀道). 촉조(蜀鳥) 등 여러 이름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
《청구영언(靑丘永言)》
이조년(李兆年)의 시조. 다정가(多情歌)는.
고시조집 《해동가요(海東歌謠)》와 《청구영언(靑丘永言)》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에 실려 전한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 [ 李兆年 1269년 ~ 1343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 백화헌(百花軒)으로 불리며 청백리로 이름난 충신이다.
.
*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해지는 설화 ,
형제 투금( 兄弟投金 ) 의 주인공은 고려시대 이억년과 이조년 형제 이야기라는 설이다...
성주 이씨 시비공원(星州李氏 詩碑公園).
성주이씨(星州李氏) 시조 이순유(李純由)는 알평의 후손으로 신라 말엽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으며 경순왕조(敬順王朝ㆍ927~935년)에 재상(宰相)까지 올랐다.
신라의 마지막을 지켜본 충신으로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민심을 수습하고 천년의 사직(社稷)을 보존하기 위하여 구국의 방책을 기도하였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름마저 극신(克臣)이라 고쳐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京山里)에 옮겨 숨어 살았다고 전한다.
성주에는 세 곳의 조선왕가 태실지가 있다.
용암 태봉의 태종 태실(사진 좌하), 월항 태봉의 세종대왕자 태실(사진 상), 가천 태봉의 단종 태실(사진 우하)
*선석산(禪石山) 산골에 솟아오른 태봉(胎峰)은 육산(肉山 : 흙산, 土山 )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선석산 (禪石山, 742.3m) 선석사 (禪石寺)앞에 자리한 월항 태봉(胎峰) 정상에는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원손 시절의 단종 태실을 포함해 총 19기의 태실이 조성되어 있다
비석도 갖추지 못한 채 파손된 화의군 태실 뒤로, 세조 태실의 <가봉비>가 세워져 있다
세조의 가봉 태실비,
예조에서 별도의 길지로 옮겨 태실을 조성할 것을 상소했으나
세조는 이를 물리치고, 태실비만 새로 세울 것을 지시했다고..
원래 태봉의 태실 부근 선석산 비호석봉에는
성주이씨 (星州李氏) 중시조, 농서군공 (隴西郡公) 이장경 (李長庚) 의 묘가 기존하였으나,
조선조에 태실이 안치됨에 따라
세종 25년(1443)에 왕명으로 이장(1455~1456)한 곳이
지금의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능골 -오현(梧峴)이다.
안산영당(安山 影堂) 농서군공(隴西郡公) 신도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41
안산영당은
원래 성주 월항면 인촌리에 있었던 성주이씨의 중시조 농소군공(隴西郡公) 이장경(李長庚)의 묘 앞에 있었다.
그런데 이장경의 묘에 세종대왕 왕자 태실이 들어서게 되자
이장경의 묘를 성주 대가면 옥화리 능골로 이장하게 되었고, 함께 있던 묘각은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그 뒤 숙종 6년(1680년)에 임금이 '안산서원'이란 이름을 내려 주었고,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을 피하려고 고종 5년(1868년)에 '안산영당'으로 이름을 고쳤다.
성주 이씨(星州李氏) 혹은 농서 이씨 (隴西李氏)
이순유의 11세손 이장경(李長庚)은 고려 고종 때의 인물로
슬하에 다섯 아들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치자
국왕은 그에게 특별히 삼중대광(三重大匡) 좌시중(左侍中)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지전리사사(知典理司事) 상호군(上護軍)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에 봉하였다.
( * 京山, 星山은 성산가야의 도읍지인, 현재의 성주의 옛 이름)
충렬왕 이후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을 따라 성주 이씨(星州李氏)라고 하게 되었다.
한편, 둘째 아들 이천년(李千年)의 ㅎ 둘째 아들 이승경(李承慶)은 원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지내며 공적을 세워 원나라 황제가 그의 할아버지 이장경을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하였으므로 농서 이씨 (隴西李氏)라고도 하였다.
명나라의 장수로 임진왜란 때 조선에 들어온 이여송(李如松)이 그의 후손이다.
시조 다정가(多情歌)로 유명한
이조년의 묘는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 산 60에 위치한다.
이장경(李長庚)의 막내 아들 문열공 이조년 [文烈公 李兆年 1269 ~ 1343]
성주이씨(星州李氏) 11代孫 농서군공(隴西郡公) 이장경(李長庚)의 다섯째 아드님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 성산군(星山君)
* 정당문학(政堂文學)은 고려시대 중서문하성의 종2품 관직
후세에 배출된 대표적인 영남학파 퇴계 이황, 남명 조식선생등이 이조년의 후학들이다.
* 이조년(李兆年)의 증손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세종조의 영의정.좌의정인
문경공 이직 [文景公 李稷, 1362 ~ 1431]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白鷺)야 웃지 마라.
오로시(烏鷺詩)를 남겼다.
성주 이씨 시비공원(星州李氏 詩碑公園).
정당문학(政堂文學) , 성산군(星山君) 이조년(李兆年)의 손자, 이포의 아들로
인복(仁復)ㆍ인임(仁任)ㆍ인미(仁美)ㆍ인립(仁立)ㆍ인달(仁達)ㆍ인민(仁敏)이 있는데...
이조년의 손자 (이포의 아들), 이인복의 육형제도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
고려말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조카이자 이인민(李仁敏)의 아들, 문경공 이직 [文景公 李稷, 1362 ~ 1431]
이직 (李稷)의
증조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李兆年)이고,
할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이포(李褒)이며,
아버지는 문하평리(門下評理) 이인민(李仁敏)이다.
‘문경공’ 이직은 고려 ‘공민왕’ 때 처음 벼슬길에 올라,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헌,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지고,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편에 서서 ‘좌명공신’ 4등에 올랐으며,
세종 때 영의정(領議政)과 ‘좌의정’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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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의 지인중에 ㅎ 이조년의 후손인 사람이 있는데...
이장경(李長庚)의 막내 아들 문열공 이조년 [文烈公 李兆年 1269 ~ 1343]
성주 이씨 문열공파 27세손 ㅇ현(鉉)
민주당 텃밭인 전남 순천에서 보수정당의 국회의원 입후보자로 재선(19대, 20대)에 성공하여 비례대표 포함 3선 국회의원에 선출된 바 있으며, 새누리당 대표를 역임했던 인물.
이정현 (李貞鉉) 전대표는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출신이다.
그는 성주 이씨 문열공(文烈公 李兆年)파 27세손.
소생의 태생지가 별고을 성주임을 알게된 그는 자신의 관향이 성주인 탓~ 무작정 기꺼이 나의 길동무가 되어버렸던 추억을 남겨준 사람이다.
양반을 아무나 하나.
'성실하고자 함(誠之)은 사람의 도리'라는 중용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는 그는
곧이곧대로 된 사람이라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실[誠實]의 사표라 하겠다.
[中庸20장]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성실(誠)은 하늘의 도요, 성실하고자 함(誠之)은 사람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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