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자빠져도 진보 흉내 내며 자빠져야 하나"
[오마이뉴스 김연기 기자] "소설이 현실정치를 발언해서는 안 된다는 희한한 소설론은 어디서 온 것이냐. 나를 비판하는 이유가 내가 정치적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좌파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말로 엎어져도 왼쪽으로 엎어져야 하고 자빠져도 진보 흉내를 내며 자빠져야 한다는 말인가."
▲ 이문열.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자리에서 이씨는 "소설가가 소설을 써놓고 제발 소설은 소설로 읽어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고약한 시대가 됐다"며 "소설이 현실정치를 발언해서는 안 된다는 것, 아니 소설에 작가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이 희안한 소설론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또 "나를 비판하는 이유가 내가 정치적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좌파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막말로 엎어져도 왼쪽으로 엎어져야 하고 자빠져도 진보 흉내를 내며 자빠져야 한다는 소리와 다름 없다"고 밝혔다.
'처형하는 자'란 뜻을 가진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는 386세대 출신의 증권회사 과장인 주인공 신성민이 나이트클럽에서 마리란 여성을 만난 뒤 겪게 되는 환상적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상징되는 보일러 수리공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신성민의 운동권 후배인 안정화가 속해있는 정체 모를 시민단체 '새 세상을 여는 모임'의 무리들이 출몰한다.
결국 새여모 회원들이 보일러 수리공을 죽이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새여모의 대표를 죽이는 등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시작하면서 유사 이래 선하든 악하든 모든 신성(神性)을 제거해온 처형자로서의 인간의 면모가 드러난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현 정부와 386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해 더 커다란 관심을 모았왔다. 특히 문제가 됐던 부분은 전체 45장 가운데 36·37장에 등장하는 '한야(寒夜)대회' 장면이다. '김대중은 두 가지 억지스러운 수사(햇볕, 포용)가 붙은 정책을 통해 남한의 보수 우파들에게 끔찍한 복수를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 장면에서는 현 정부와 386 출신 인사들에 불만을 품은 기득권 세력들의 정치적 발언들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이씨는 "논란이 된 부분은 전체 원고지 2500장 가운데 200장이 넘지 않는 분량으로 소설 전개상 필요해서 단순한 배경 내지 소설적 장치로서 넣은 것일 뿐인데 세간에는 내 소설이 마치 현실정치를 풍자한 본격 정치소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어 속상하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소설에 녹아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씨는 "그렇다고 소설에 드러난 정치적 견해가 나와 완전히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며 "소설 주인공들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현실 인식에는 나 역시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나에 대해 보수우파라로 몰아세우는데 80년대는 저항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짐을 질 각오가 돼 있다, 필요할 때는 정치적 발언도 할 것이다"며 "모두 중도 좌파로 기울면 그것 역시 골치 아픈 일이고 나 같이 미련한 사람도 있어야 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씨는 "나는 어디까지나 소설가이고 모든 능력과 효율을 글쓰기에 바치고 싶다"며 다만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만 보는 경우가 많다"고 자신의 작품을 정치소설로 이해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올해 치러지는 대선과 관련해선 "한나라당 후보가 1위를 하고 있지만 아직 1년이나 남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라면서 "해외에 체류하면서 대선 투표에 참여하거나 혹시 국내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버클리대학 한국학과 초청으로 미국에 머물다 잠시 귀국한 그는 이달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김연기 기자
2007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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