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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사전교육" 드러눕는 간첩단...적법투쟁에 수사당국 속앓이

Jimie 2023. 2. 14. 05:45

"이것도 사전교육" 드러눕는 간첩단...적법투쟁에 수사당국 속앓이

중앙일보

입력 2023.02.14 09:00

간첩단 의혹을 수사 중인 방첩당국이 기소되거나 구속된 피의자들의 ‘진술 거부 투쟁’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진술 거부하는 데다 수사기관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하고 헌법소원까지 동원해 수사 절차를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다.

‘창원 간첩단 사건’ 연루 피의자들이 지난달 31일 각각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방첩당국에 따르면,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소속으로 반정부 활동을 한 의혹을 받는 ‘창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지난 1일 구속된 피의자 4명은 조사를 위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며 유치장에서 드러누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조사를 일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도 재판부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대리하는 장경욱 변호사는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는 (재판에서)증거 능력이 없는데, 수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결국 자백 강요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국정원 간부 출신 인사는 “증거 인멸과 방법과 수사 단계에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는 내용 또한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받는 교육 내용에 포함돼 있다”라고 말했다.

 피의자 측의 고소·고발과 헌법소원 등도 수사의 속도를 지연시키거나 적극적인 피의자 조사를 가로막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창원 간첩단 사건의 변호인은 지난달 28일 국정원과 경찰의 창원 간첩단 연루자 체포 후 조사과정을 문제삼아 국정원 안보수사국장·수사팀장·수사관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수사관이 피의자 한 명을 협박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장 변호사는 체포영장 발부와 구속영장 발부 판사가 동일한 점을 이유로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절차적으로 불공정했다는 취지로 헌법소원도 냈다.

 

공안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신문 절차, 내용 등 사소한 것 하나라도 규정에 어긋나면 이를 토대로 무차별적으로 고발하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수사할 수 밖에 없다”며 “과거 일심회 사건 때는 피의자 신문 기회를 차단하려고 변호인들이 피의자를 릴레이로 접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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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변호인 교체·헌법소원·증거 부정…공전하는 공판

 간첩단 연루자들은 기소 이후 공판에선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하고 증거 일체를 부정하는 등 재판 지연 전략을 펴고 있다. 검찰이 2021년 8월에 기소한 ‘청주 간첩단’ 사건의 경우 1년 반째 1심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속된 3명의 피의자는 구속기간 만료와 보석 인용으로 석방됐다. 변호인들이 법관 기피,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등을 신청하고 변호인을 자주 교체해 재판을 공전시키는 것을 재판 대응 전술로 삼으면서다. 이정훈 4·27 시대연구원의 북한 공작원 회합·통신 혐의 관련 재판은 2021년 6월 1심이 시작됐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청주 간첩단 피의자 중 일부는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간첩 조직의 총책으로 의심받는 조직국장 출신 B씨와 접촉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과 경찰의 수사 내용 중 우선 북한 공작원 회합·접선과 지령문 내용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보강하고 공판에서 입증 가능한 증거물 확보에 우선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간첩단 의혹 사건 중 지난달 20일 검찰이 처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하연호 전북민중행동 공동상임대표 사건의 경우 2013년 9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베트남과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4차례 만난 사실이 공소장에 적시됐다. 방첩당국이 2021년 기소 직전에 조사를 매듭지은 터라 창원과 제주 등 다른 지역 간첩단 사건에 비해 기소가 빨랐다고 한다.

 

 공안 수사 이력이 풍부한 한 부장검사는 “국정원과 경찰이 확보한 증거는 공판에서 위법수집증거로 분류되는 경우가 적잖다”며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재판이 장기 표류할 수 있는 만큼 공판에서도 증거 능력이 쉽사리 깨지지 않는 증거들을 합법적으로 끌어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훈·김철웅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