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세상을 떠난 ‘분단시대’의 원로 사학자 강만길은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신지 모르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왜곡된 역사의식으로 북한을 비호하며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닌 반국가 세력을 비난해서다. 그 ‘왜곡된 역사의식’을 불어넣은 원조가 고(故)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1차 포럼’이 열린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오른쪽). 동아일보DB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교수님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했다”고 트위터로 강만길을 추모했다. 늘 그랬듯, 온화한 거죽만 보면 뭐가 문제인지 모를 수 있다. 강만길이 대체 뭘 가르쳤기에 윤 대통령이 그런 말까지 했는지는 ‘촛불행동’이라는 단체가 쓴 추모글을 보면 안다.
“선생님은 ‘민족해방운동’의 뿌리를 깊이 탐구하시고 분단이 존재하는 한 민족해방의 과업은 끝나지 않았음을 절절하게 강조해오셨습니다.” 심지어 촛불행동은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분단체제를 종식시키며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족자주독립을 완성하는 날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면서 “일깨워주셔서 감사하다. 영면하시옵소서” 했다.
“선생님은 ‘민족해방운동’의 뿌리를 깊이 탐구하시고 분단이 존재하는 한 민족해방의 과업은 끝나지 않았음을 절절하게 강조해오셨습니다.” 심지어 촛불행동은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분단체제를 종식시키며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족자주독립을 완성하는 날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면서 “일깨워주셔서 감사하다. 영면하시옵소서” 했다.
● 분단사관-통일사관의 원조 강만길
강만길에게 현재의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없다. 그가 1978년 출간한 책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기에 근대국가로서 불완전하다. 근대 국민국가란 통일된 민족국가 수립을 말하는 것이고, 남쪽은 좌우합작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한 ‘태어나선 안 될 나라’일 뿐이다. 익히 듣던 논리 아닌가. 맞다. 노무현-문재인 정권, 86운동권 그룹과 전교조, 민노총 같은 데서 우리나라를 폄훼할 때 늘 들먹이던 분단사관·통일사관·민중사관이다.
2018년 강만길 교수(오른쪽)가 리종혁 당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악수하는 모습. 동아일보DB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은 1970~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 가치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킨 필독서였다. 핵심은 1945년 이후를 단순히 ‘해방 이후’라고 할 게 아니라 ‘분단시대’라고 부르는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분단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평화통일 의지를 갖게 된다는 데 누가 감히 거부하겠나. 강만길은 ‘식민지화, 민족분단 등 역사적 실패의 근본적 원인’이 ‘주체적 역량의 부족’ 때문이었다며 분단시대를 타파하는 주체 즉 민중의 의지를 강조했다.
‘분단시대…’가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의 피를 끓게 했다면, 학계에 충격을 던진 것은 1975년 전국 역사학대회에서 제기한 ‘분단시대 사학론’이었다. ‘광복 30년 한국 역사학회 반성과 방향’을 주제로 열린 제18회 대회에서 강만길은 해방 후 국사학이 한계를 드러냈다며 ‘분단시대 국사학’은 통일운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74년 천관우의 ‘한국사의 재발견을 읽고’ 서평을 ‘창작과 비평’에 쓰며 ‘분단시대’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데 이어 이번엔 전국적으로 역사학의 정치화를 외친 거다.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절이었다. 하지만 1972년 7·4 공동성명이 나왔다. 제1항이 조국통일 원칙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에 합의한다는 거다. 같은 해 10월 유신이 선포됐지만 장준하 문익환 백낙청 강만길 등 ‘비판적 지성’이라 불리던 이들은 반공을 넘어 분단과 통일문제를 성찰함으로써 ‘민주화운동=통일운동’이라는 인식을 보였다(고려대 정태헌 교수 2018년 논문).
어쩌면 강만길에게는 북보다 남이 더 절망스러웠는지 모른다.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2010)에는 1970년 반년간, 또 1978년 6개월간 일본에 체류하며 북에서 나온 역사 연구 성과를 접하고 놀랐다는 대목이 나온다. 경제도 70년대 초반까진 사회주의 체제인 북이 더 앞선 상태였다. 이런 경험이 해방 전 좌우합작도, 좌익활동도 독립운동이었고 향후 통일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연구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주사파 86운동권이 반색을 할 논리였던 거다.
● ‘역사학의 정치화’를 선도하다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절이었다. 하지만 1972년 7·4 공동성명이 나왔다. 제1항이 조국통일 원칙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에 합의한다는 거다. 같은 해 10월 유신이 선포됐지만 장준하 문익환 백낙청 강만길 등 ‘비판적 지성’이라 불리던 이들은 반공을 넘어 분단과 통일문제를 성찰함으로써 ‘민주화운동=통일운동’이라는 인식을 보였다(고려대 정태헌 교수 2018년 논문).
어쩌면 강만길에게는 북보다 남이 더 절망스러웠는지 모른다.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2010)에는 1970년 반년간, 또 1978년 6개월간 일본에 체류하며 북에서 나온 역사 연구 성과를 접하고 놀랐다는 대목이 나온다. 경제도 70년대 초반까진 사회주의 체제인 북이 더 앞선 상태였다. 이런 경험이 해방 전 좌우합작도, 좌익활동도 독립운동이었고 향후 통일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연구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주사파 86운동권이 반색을 할 논리였던 거다.
● 이젠 강만길의 책을 덮어라
심지어 “6·25전쟁은 침략전쟁 아닌 통일전쟁”이라며 “21세기 통일민족국가시대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통일방법은 무력통일이나 혁명통일은 물론 독일식 흡수통일도 안되고 타협통일·협상통일·체제공존통일을 지향한다”고 강만길은 썼다. 제목도 거룩한 책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2018)에서다. 세상에 지향할 게 없어 전체주의 북조선과 협상통일을 굳이, 왜 해야 한단 말인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라면 또 모른다)
2007년 강만길 당시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 청와대 초청 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학자로서 “한반도 문제는 동아시아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동아시아가 경제공동체를 만들려면 한반도 평화통일이 선결과제”라고 주장할 순 있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은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재통일이 달성될 때에야 비로소 청산된다”는 억지 주장까지 읽고 나면 아, 지겹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학자의 책이 운동권 교본이 됐고, 그 제자들은 삐딱한 국사 교과서를 썼으며, 그런 사관(史觀)의 세례를 받고 집권한 정치가 나라를 엉뚱한 데로 끌고 다녔다는 사실이 나는 분하고 원통하다.
그리하여 제발 바라노니, 고인의 살아생전 당부대로 강만길을 밟고 넘어서 주자. 안 그러면 이 나라는 망한다니, 이젠 강만길의 책을 덮자(찢어도 좋다). 더불어 분단사관까지 털어내 버리자. 장맛비에 깨끗이 씻겨가 버리도록.
그리하여 제발 바라노니, 고인의 살아생전 당부대로 강만길을 밟고 넘어서 주자. 안 그러면 이 나라는 망한다니, 이젠 강만길의 책을 덮자(찢어도 좋다). 더불어 분단사관까지 털어내 버리자. 장맛비에 깨끗이 씻겨가 버리도록.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