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헌법재판관은 ‘9인의 현자’가 되어야 한다
입법폭주 내달리는 민주당… 검수완박은 그 완결판
국회주권·헌법주권 충돌할 때 무엇이 우선하나
선출된 권력 물론 중요하지만 입헌주의로 민주주의 지켜야
이번 헌재판결 유감이지만 ‘9인의 현자’를 기대할 수밖에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Quis custodiet ipsos custodes?) 검수완박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3‧23판결을 보며 이 경구가 떠올랐다. 지난해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 온갖 꼼수와 편법, 불법이 판쳤다. 그런데 헌재는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지만, 법률안은 유효하다고 선고했다. 하지만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가 망가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민주 헌정을 지키는 게 존립 목적인 헌재로서는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헌재의 잘못된 판결은 누가 판결하는가?
표면상 이런 억지가 생긴 이유는 이미선 재판관의 판결 때문이다. 이 재판관은 심의·표결권의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법률안이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나머지 8명의 재판관은 4:4로 나뉘어, 전체 인용 또는 전체 기각 쪽에 섰다. 그래서 심의·표결권의 침해는 5:4로 인용되고, 법률안의 무효는 4:5로 기각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전체 기각 의견(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에 있다. 이 입장은 법안 통과 과정에서, 헌법과 국회법 위반이 없었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도 침해되지 않았고, 법률안 무효화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논리정연하다. 다만, 이 논리의 첫 단추인 민형배 의원의 탈당과 안건조정위원 선임에 대한 판단이 아킬레스건이다. 이게 무너지면, 모든 논리가 와르르 무너진다. 국회 상임위원회는 이견이 있을 때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한다.
의원 수가 가장 많은 제1교섭단체 3명, 기타 3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2/3 이상 찬성으로 의결한다(국회법 제57조의 2). 그래서 민주당은 민 의원을 탈당시켜 기타 조정위원으로 임명해, 그 구성을 사실상 4:2로 만들었다. 의결 전에 게임 끝난 것이다. 인용 입장은 당연히 이걸 위법으로 판단했다. 이에 반해 기각 입장은 민 의원이 무소속이므로 “국회법상 아무런 제한이 없”고, “탈당은 의원 개인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자율적인 결정”이라고 판시했다(2022헌라2).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유분수다. 이런 뻔한 형식 논리로, 물 흐르듯이 전체 기각의 법리를 구성했다. 법의 자동기계와 무엇이 다른가.
이미선 재판관의 모순된 판결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이 어긋남은 논리학보다 정치학의 대상이다. 이 재판관은 국회의 자율적 입법권을 존중해 헌재의 적극적 조치는 “헌법적으로 요청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했다. 권한 침해와 달리 법률안의 무효 여부는 자제하는 게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이라고 보았다. 그 관점에서, 이 사건은 “국회의 기능이 형해화될 정도의 중대한 헌법 위반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 지점에서 전체 인용의 입장(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과 갈린다. 이에 따르면, 이 사건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헌법의 기본원리를 훼손했다. 헌법상 권한침해사유도 매우 중대하다. 따라서 다수당의 횡포로 인한 위헌, 위법 상황을 차단해 헌법적 권한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리가 정연하고, 국민의 눈높이에도 맞는다.
그런데 이미선 재판관이 제기한 삼권분립 문제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회주권과 헌법주권 중 무엇이 우선하나? 민주주의 원리상 선출된 권력이 사법부보다 우위다. 하지만 정부나 국회가 민주주의를 파괴할 때는 어찌하나? 나치즘이나 포퓰리즘, 권위주의체제에서는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난다. 한국은 1987년 후에도 제왕적 대통령제가 늘 문제였다. 지금은 국회도 큰 문제다. 민주당이 입법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검수완박은 그 완결판이다. 대통령의 국정과제는 철통같이 틀어막는 비토크라시(vetocracy)도 일상화되었다.
이 광풍을 막자면 합헌성을 판단하는 사법심사가 필요하다. 헌법이 통치하는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이 전통은 미 제4대 대법원장 존 마셜((John Marshall)이 확립했다. 이로써 힘도, 의사도 없던 사법부가 제3의 권력이 되었다. 하지만 사법부가 “모든 헌법적 문제에서 최종 판정 기관”이 되면 사법통치(juristocracy)의 압제가 도래한다.
제퍼슨 미 대통령의 비판이다. 사법심사권은 절제되어야 한다. 선거 같은 견제 장치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헌법을 명백히 위배하지 않는 한 의회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결정적 위기를 최종 해결할 심벌로서 왕이나 국교의 수장이 없다. 미국은 ‘9인의 현자’로 불리는 연방 대법관들이 그 역할을 한다. 한국 헌재도 이미 대통령 탄핵이라는 큰 정치적 위기를 두 차례나 수습했다. 헌재의 소임은 더 높아야 한다. 속 빈 강정 같은 형식논리로는 그 소임을 감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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